[즐거운 책읽기] 엄마를 부탁해(신경숙/창비)

입력 2010-02-18 11:38:18

어머니 실종으로 가족관계 드러나고, 부재에 괴로워해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가족들은 엄마의 얼굴사진이 담긴 전단을 만들어 거리에 붙이고 신문에 광고를 낸다. 하지만 엄마는 나타나지 않는다. 가끔 엄마를 보았다는 제보자들은 한결같이 파란 슬리퍼를 신은 초라한 몰골의 할머니를 증언한다.

아들 셋, 딸 둘을 잘 키워낸 엄마. 그는 밖으로만 떠도는, 때로는 여인을 데리고 집에 들어오기도 하는 남편 대신 아이들을 키우고 농사일과 집안일을 모두 혼자 해낸다. 일찍이 홀로 된 시누이의 잔소리를 들으며 가난한 집안 살림을 꾸려나가는 엄마는 식민지 시절 태어나 학교를 거의 다니지 못했고, 어수선한 세상 때문에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내와 어린 나이에 혼인했다. 젊은 나이에 전쟁을 겪고 아이를 여럿 낳았으며 자식들 밥 안 굶기고 키우느라 고생했던 그 시대의 우리 어머니들.

전쟁 통에 남편을 잃기도 했고, 멀쩡한 남편들조차 스스로도 어쩌지 못할 열기에 휩싸여 집을 나가 떠돌기도 했던 시절. 하지만 어머니들은 아버지가 부재하는 집을 굳건히 지켰다. 그래서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 현기영의 '지상의 숟가락 하나'에 나오는 어머니들은 내면의 고통을 안으로만 삭이는, 강인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남성 소설가들의 눈에는 어머니의 그 강인함 뒤에 숨은 눈물과 고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여성 작가 신경숙의 소설 속 어머니는 다르다. 실종이라는 다소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어머니. 어머니의 실종으로 가족들은 그동안 거기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어머니의 부재에 괴로워한다.

소설은 처음 작가인 큰딸의 시점으로 시작된다. 2장은 어머니에게 크나큰 자랑이자 남편처럼 든든한 의지가 되었던 맏아들의 시점. 3장은 아내란 으레 그 자리에 있으려니 여기며, 아내보다는 몇 발자국 앞서 걸어가는 모습으로 표현되는 남편의 시점. 그래서 결국 남편은 그날 따라 아무도 마중나오지 않은 서울역 지하철에서 아내를 잃어버린다. 자식들 짐스럽지 않게 한다고 서울 아들네에 당신들 생일을 쇠러 가던 길이었다. 4장은 어머니 박소녀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런데 어머니 박소녀는 이미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사람이 죽으면 새가 된다고 했던가. 그는 나무에 앉아 둘째 딸을 바라보고 있다. 마지막 장은 다시 큰딸인 작가의 시점. '엄마를 잃어버린 지 9개월째다.'라고 첫 문장이 시작된다.

각 장에서 화자들의 다른 시점에 의해 감춰져 있던 어머니 박소녀의 삶과 가족관계가 점차 드러난다. 그리고 어머니의 특별한 친구였던 '그'의 존재도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남편의 잦은 부재, 누구의 잘못이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시동생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과 죄책감, 힘든 노동과 가난으로 견디기 힘들 때마다 어머니는 그를 찾아간다. 그 역시 아내의 출산을 앞두고 쌀 한 줌, 미역 한 오래기 장만할 수 없었던 지독한 가난 속에서 짐자전거를 훔쳐서 팔려고 했던 터. 그와 어머니는 서로에게 힘든 삶의 길동무가 되어주었던 것이다.

엄마는 머리가 쪼개지는 두통을 견디면서도 자신의 병을 내색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으면서도 자식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마을의 가여운 아이를 거두고, 소망원이라는 보육시설의 후원자로 남몰래 선행을 베푼다. 글자를 읽을 줄 몰라 딸의 소설도 마음껏 읽지 못했던 엄마. 자식들을 떠나보내고 쓸쓸했던 엄마. 그래서 작은 딸은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적는다. "언니,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묻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신남희(새벗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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