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펭귄 부부

입력 2010-02-18 08:35:48

펭귄이 오모크를 향해 길을 떠난다. 다가올 이성과의 만남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그곳은 바다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천적들로부터 장차 태어날 아기를 보호하기 위한 곳이다. 펭귄은 단 하나의 상대와만 사랑을 나눈다. 얼마 후 둘 사이에 사랑의 결실이 생기고 아빠가 된 펭귄은 엄마 펭귄이 낳은 알을 조심스레 건네받는다. 영하 60℃까지 떨어지는 추위. 아빠 펭귄은 발 근처 주머니에 알을 품은 채 꼼짝 않고 자리를 지킨다. 장장 4개월. 아빠의 몸은 온통 눈과 얼음으로 덮여간다. 한편 아빠가 알을 지키느라 사투를 벌이는 동안 엄마는 바다로 돌아가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한다. 드디어 아기 펭귄이 태어난다. 기력이 다한 아빠는 끝까지 소화시키지 않고 위 속에 남겨 둔 음식물을 게워내 아기에게 먹인다. 그제야 활기에 넘친 엄마가 돌아오고 재회의 기쁨도 잠시, 이번에는 아빠가 바다로 떠난다.

'펭귄-위대한 모험'이라는 영화의 내용이다. 남극에 사는 황제 펭귄의 생태를 찍은 영화인데 극한 환경에서도 대를 이어가는 그들의 종족 보존 방식이 잘 나타나 있었다. 영화는 여러 각도에서 감동적이었지만 내게 가장 인상에 남았던 장면은 출산을 마친 펭귄 암컷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자유로운 유영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완벽한 즐거움을 가능케 한 든든함이란.

"장에 내다 팔고 싶은 1순위는?"

"남편"

누군가 웃자고 꺼낸 말이었지만 터지는 웃음 속에 씁쓰레한 무언가가 앙금처럼 내려앉았다. 예전 같지 않은 남편들의 위상에 대한 연민이었을 것이다. 세상은 변했다. 남성만큼 많이 배운 여성은 다양한 형태로 사회생활에 참여하고 있다. 과거처럼 가사와 육아의 책임을 전적으로 여성이 짊어져야 한다면 미혼 여성은 결혼하기를 꺼릴 것이고 신혼은 아이 낳기를 회피할 것이고 중년 여성은 남편을 귀찮아할 것 같다. 함께 일하고 공평히 휴식을 취하는 펭귄 부부의 삶이 돋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우리 부부가 결혼을 한 지도 어느덧 28년이 지났다. 남편은 기념일이 돌아오면 축하 카드를 건네준다. 언젠가부터 나는 카드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곳에 적힌 말들이 가슴에 와 닿던 때부터였다. 빨래를 널고 빨래를 개고 토끼장을 청소하는 소소한 일. 남편이 도와주는 집안 일들이다. 아껴주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차곡차곡 쌓이는 카드의 높이만큼 더해지는 신뢰감. 100세까지 잘 살아보자는 그의 말이 결코 무색하지 않다.

함께 나란히 부엌에 서서 요리하는 부부의 뒷모습을 그려본다. 펭귄 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삼삼하다.

백옥경 (경북도립구미도서관 느티나무독서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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