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돕느 보람에 푹 빠지니 힘들던 농삿일, 신바람 씽씽
설을 앞두고 민족 대이동이 절정을 맞을 즈음, 상주시 낙동면 낙동리에 사는 유영일(49)·현남순(46)씨 부부는 어김없이 찾아가는 곳이 있다. 귀향 행렬에 섞여 고향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일 년 동안 정성들여 키운 농산물로 마련한 정성이 가득한 선물을 들고 어려운 이웃과 복지시설을 방문하는 것이다. 올해로 벌써 5년이 넘었다.
이번 설에도 이 부부는 직접 농사지은 쌀(120kg)로 떡을 만들어 어려운 이웃들에게 선물했다. 하늘지기, 효도마을, 상주시종합사회복지회관 등 복지시설 3곳과 홀몸노인, 장애 가정 70가구에 각각 전달하는 등 남몰래 이웃사랑을 실천해왔다. 지난해 추석 무렵엔 직접 재배한 고추로 고추장을 만들어 1.2kg짜리 용기에 각각 담아 70여통은 마을 내 홀몸노인들에게, 30여통은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나눠줬다. 김장 양념을 하고 남은 고추를 시장에 내다 팔 생각도 했지만 어려운 이웃들에게 작으나마 도움을 주자는 마음에서 고추장을 만들었다.
이 부부의 베풂은 연중 무휴다. 명절이면 떡과 다양한 농산물을, 김장철에는 김치를 직접 담가 생활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매년 비닐하우스 2동에 생활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줄 김장용 배추를 따로 가꿀 정도다.
이들 부부의 형편이 넉넉하기 때문이 아니다. 돈 한푼이 아쉬운 농촌에서 힘들여 지은 농산물로 봉사를 하는 이들 부부를 보고 이웃들은 가끔 "그렇게 넉넉한 형편도 아니면서 뭐하러 남을 돕느냐, 바보 아니냐"며 핀잔을 준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행복 바이러스' 이야기를 꺼낸다. "빠듯한 형편이지만 남을 돕는 것이 버릇되면 자꾸 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아요. 사랑과 행복의 바이러스라고 할까요."
상주시 낙동면 생활개선회 회장을 맡고 있는 부인 현씨는 연말이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사랑나눔 김장' 행사를 열면서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배추를 나눠준다. 지난해 말에도 배추 500포기로 김장을 담가 복지시설과 홀몸노인, 소년소녀 가장 등 이웃들에게 골고루 나눠줬다. 이 부부가 몇 년 전부터 일상적으로 해오고 있는 생활의 일부다. 이웃을 배려하고 돕는 이 부부의 마음 씀씀이는 대물림된 것이다.
이들 부부에게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15년 전 결혼과 함께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에 돌아와 농사일을 시작했다. 남의 땅을 빌려 비닐하우스 농사를 시작했다. 첫 해 농사가 성공한 것이 화근이었다. 부농의 꿈에 부풀어 다음해 3배 이상 규모를 키웠으나 실패의 연속이었다. 늘어가는 빚을 감당하지 못해 한때는 야반도주까지도 생각했다.
비닐하우스에서 일 년 내내 수박과 오이, 호박을 번갈아 재배하면서 시련을 이겨냈다. "아직도 빚을 다 갚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우리가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면 남을 더 돕고 싶어요. 동병상련이라고 할까요."
이 부부는 거의 일 년 내내 비닐하우스 속에서 생활한다. 봄에는 오이를, 여름엔 수박을 재배한다. 부인 현씨는 낮에는 비닐하우스일, 밤에는 동네 일을 하는 등 모든 일에 애착을 갖고 활동하고 있다. 마음이 넉넉해서인지 이 부부의 얼굴엔 늘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부부는 "우리에게 힘이 있는 한 이웃을 돕는 활동을 계속할 생각"이라며 "내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촛불처럼 많은 분들이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온정을 나누는 설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상주·이홍섭기자 hs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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