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門에서 華岳까지](7)단석산서 고헌산

입력 2010-02-12 08:05:23

신라 五岳의 하나인 단석산, 김유신 장군 전설 곳곳에…

108만평 땅에 펼쳐진 OK수련원. 옛날 화랑 수련장으로 전해지는 땅이다. 당초 목장으로 개발된 것이나 청소년 수련시설로 전환됐다. 소유자도 4년여 전 불교 진각종 유지재단으로 바뀌었다. 정비를 위해 작년 7월 이후 휴업 중이라 했다.
108만평 땅에 펼쳐진 OK수련원. 옛날 화랑 수련장으로 전해지는 땅이다. 당초 목장으로 개발된 것이나 청소년 수련시설로 전환됐다. 소유자도 4년여 전 불교 진각종 유지재단으로 바뀌었다. 정비를 위해 작년 7월 이후 휴업 중이라 했다.

당고개로 숙였다가 다시 솟구치는 낙동정맥은 단석산(827m)-태종고개(560m)-백운산(893m)-소호령(665m)-고헌산(1,035m) 구간을 단숨에 내달린다. 평면 기준으로 20㎞를 넘는 거리. '단숨에'라는 얘기는 그 사이 오르내림이 크지 않다는 말이다. 자동차가 씽씽 달리는 포장도로에 의해 잘리지도 않는다.

그 들머리 단석산(斷石山)은, 부산 방향 경부고속도를 탈 때 건천을 지나면 남쪽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산이다. 그 정상에서의 조망이 대단하고, 특히 경주 쪽으로 일망무제다. 경주대와 충효동 아파트단지가 나타나면서 그 사이의 '선도산'이 눈길을 확 끈다. 그 너머로 경주 시가지가 훤히 드러나고 보문단지까지 짚인다. 더 압권은 저 멀리 떠오르는 포항 공단 일대다.

정상에서 북서편 기슭의 '신선사'(神仙寺)로 가는 산줄기를 타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오봉산-부산(富山·깃대봉)-병풍산-석두산-만병산으로 이어진 산줄기가 한 손에 잡힐 듯 한다. 앞서 우리가 애써 살폈던 바로 그 능선이다.

삼국 시기 신라가 제사를 올릴 다섯 산(오악·五岳) 중 중악(中岳)으로 단석산을 꼽았던 연유가 짐작될 듯하다. 불상·보살상 10채를 새겼다는 신선사 마애석불군(국보 199호) 등 대단한 문화재와 김유신 장군 전설이 곳곳에 남겨진 게 이래서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단석산은 경주뿐 아니라 인접 다른 지역에서까지 상당히 중시했다. 상당히 떨어져 있는 청도의 옛 읍지조차 그 땅 북편 담장 격인 비슬기맥이 이 산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끌어다 붙인 것이 예다. 그 동편 골짜기에 고속철 '신경주역'이 들어설 참이니, 중요성은 앞으로 더 커질지도 모른다.

단석산 덩어리 본체는 최고봉(827m)에서 나뉘는 3개의 큰 지릉들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낙동정맥은 그 본체를 비켜간다. 최고봉에서 서남쪽으로 800여m 떨어져 있는 689m 분기봉을 통과할 뿐이다. 본체와 이 정맥 산줄기는 큰 골짜기로 파여 갈라져 있다. 북편이 건천읍 송선리 우중골, 남편이 내남면 비지리 절골이다. 거기서부터는 행정구역도 경주 건천읍에서 내남면으로 바뀌는 것이다. 분기봉서 정상까지는 20여분을 더 가야 한다.

높이 315m가량의 당고개에서 출발해 분기봉을 오르노라면, 산줄기는 먼저 한꺼번에 300m 이상 쳐 올라 최고점이 661m인 큰 산덩이로 올라선다. 그러는 중 처음 30여분 오르면 왼편(동편)으로 거대한 단석산 본체 덩어리가 위용을 드러내고, 돌아보면 지나온 부산성의 고랭지 채소밭이 훤하다.

그 산덩이에서 길은 거꾸로 100여m 떨어져 내렸다가 다시 솟아 분기봉에 이른다. 당고개서 2.6㎞라고 안내돼 있으며, 1시간 정도면 이를 수 있다. 그 높이를 695m로 표시한 경우가 보이나 그건 잘못이다.

낙동정맥은 분기봉을 지난 후 다시 100m가량 폭락했다가 60m가량 솟은 뒤 점차 하강한다. 이 구간 산줄기를 마치 정원이나 골프장 같이 가꿔 놓은 게 'OK수련원'으로 알려진 시설이다. 분기봉서 2㎞라 안내돼 있으나 산길답잖게 30여분이면 도달할 수 있다. 그곳에선 정맥 위에 덩그러니 올라앉은 폐쇄된 교회건물이 먼저 다가와 답사객을 놀라게도 한다.

단석산은 이 구간을 끝으로 위력을 다한다. 거길 거친 뒤 정맥은 고도를 더 낮춰, 대체로 550±50m 정도의 완만한 높이를 한참 동안 유지한다.

그렇게 4㎞쯤 진행하면 단석산~고헌산 구간에서 가장 낮은 '상목골재'에 이른다. 장승들이 떼를 지어 답사객을 맞는 그 지점 바로 아래에 '상목골'이라는 마을이 있다.

재 일대에서는 3만평 땅에 주택 300채의 친환경마을을 만들려는 노력이 벌써 몇 년째 진행 중이다. 그 사업 대표는 "작년 가을 경북도청에 의해 '녹색마을'로 지정됐고 이곳을 지나 고속철 경주역과 연결하는 지방도 건설도 확정됐다"며, "1차 30가구분 건설이 올해 결실될 것"이라고 했다.

거길 지나 또 10리 정도 진행하면 행정구역이 경주에서 울주(울산시)로 바뀐다. 산줄기 위세는 그 변경선에 가까워질 즈음 다시 살아난다. 불쑥 700m봉을 선보이면서 높아지기 시작, 울주 구간으로 깊이 들어서서는 893m 높이의 '백운산'을 올려 세운다.

그러나 백운산은 별로 재미없다. 특히 마루금 위로 쳐진 방화선을 산악자동차들이 마구 올라 다녀 산을 다 망가뜨려 놨다. 백운산 정상에 나붙은 높이 표지들도 황당하다. 한 표석엔 901m, 다른 표석엔 907m로 잘못 돼 있다. 1대 25,000 지형도가 거기에 수준점(水準點)을 설정해 893m라고 명시했는데도 이런다.

1대 5,000 지형도에선 그 높이가 까딱 891.6m로 보일 소지가 있다. 하나 그건 최고봉 북사면에 있는 암괴군의 표지로 읽는 게 타당해 보인다. 이 지형도는 더 북편 845m봉에도 백운산이라는 명찰을 중복해 달아 놔 또 혼란을 부르기도 한다. 잘못된 것이다.

그렇지만 알고 보면 그 845m봉 역시 주목할 봉우리임에는 틀림없다. 바로 '호미(虎尾)지맥'이 갈라져 나가는 분기봉이기 때문이다. 동쪽으로 달려 천마산(621m)~치술령(767m)~토함산(745m)~추령(감포고개)을 거쳐 호미곶에 닿는 게 호미지맥이다. 그 지맥 북편은 포항으로 가는 형산강, 남편은 울산으로 가는 태화강 유역이다. 두 강이 이 845m봉에서 시발된다는 뜻이다. 단석산 정상에서 포항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것도 이렇게 형산강 물길이 틔어 통로가 돼 주는 덕분일 터이다.

하지만 그 일대는 형산강·태화강 외에 밀양강 원류인 동창천의 최상류 구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845m봉을 산꾼들은 '삼강봉'(三江峰)이라 부르기도 한다. 앞서 본 바 있는 '삼수령'(三水嶺)을 연상시킨다. 낙동정맥 분기점인 태백 매봉산의 그 1,145m봉에서는 한강-낙동강-삼척오십천 물길이 나뉘어졌었다.

낙동정맥은 삼강봉을 지나고 백운산을 거친 뒤 소호령으로 낮아졌다가 고헌산(1,035m)으로 치솟는다. 울진~봉화를 넘어 다니는 '답운치'라는 고개 남쪽의 통고산(1,067m) 이후 낙동정맥에 솟는 최고봉이다. 태백서 출발한 정맥이 얼마 안 가 잃어버리는 1,000m 높이를 참 오랜만에 회복해 보이는 첫 산이기도 하다.

이 고헌산은 저 고명한 '영남알프스'의 박두를 알리는 팡파르다. 숲 없이 맨몸을 훤히 드러낸 그 모습부터가 그 산군의 전형이다. 그 모습이 하도 품위 있어 보고 봐도 다시 또 보고 싶다.

그 아래 '소호령'에 차를 세우고 접근하면 고헌산 첫 봉우리는 30분 만에 오를 수 있다. 그건 재(665m)가 높아서일 뿐 산이 낮은 탓은 아니다. 그 정점에서는 울산이 마치 앞마당인 양 내려다보인다. 이곳이 태화강 시원지라는 사실이 새삼 실감된다.

하지만 흔한 인식과 달리 고헌산 최고봉은 울산만의 땅이 아니다. 물론 소호령서 올라 처음 도달하는 1,034m봉, 조금 더 가서 정상표석을 머리에 이고 있는 1,032m봉 등은 울주 영역이다. 그러나 최고봉은 거기서 낮은 재로 한참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서는 마지막 1,035m봉이다. 그건 경주와 울주의 경계에 솟아있다.

그런데도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아니 그 마지막 봉우리가 최고봉인 줄조차 아는 이가 거의 없다. 흔히 접하는 자료들 대부분이 그 높이를 1,020m로 낮춰 표기하는 탓이다. 서쪽으로 치우쳐 있다 보니 답사객의 인식도도 떨어진다. 거기서는 곧장 재로 내려서도록 길이 이어져, 아예 하산 길목으로나 여기는 사람까지 있다.

그러나 1,035m봉은 분명 고헌산 최고봉이다. 그러니 그걸 경계 삼는 경주가 고헌산을 '경주의 산'이라 해 하등 이상할 게 없다. 그럴 경우 고헌산은 경주에서 제일 높은 산이 될 터이다. 정상석은 마땅히 1,035m봉에 세워져야 한다. 그건 경주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경주 영역은 1,035m봉뿐 아니라 고헌산 남서쪽 비탈까지 넘어가 있다. 이 때문에 그곳에 비가 내리면 경주 물이면서도 형산강이 아니라 울산 태화강으로 흘러간다. 왜 땅을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경계 지었는지 이해가 안 간다.

'여기서부터 경북입네' 하고 알리는 경북지사·경주시장 이름의 엄청나게 큰 표석이 산 너머 저쪽 비탈에 세워져 있는 모습이 무척도 어색하다. 거긴 누가 봐도 울산 땅 같은 느낌이다. 그런 표석은 산줄기 고개 마루에 버티고 서 있어야 제격인 법이다.

글 박종봉 편집위원

사진 정우용 특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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