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을 피우고 싶을 때는 밥이 아닌 것을 먹어 본다. 마른 것, 딱딱한 것, 또는 차가운 것.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은 결국 나의 게으름을 단칼에 베어버린다. 간편함을 포기하게 만드는 우리 음식. 세계인들도 감동한 맛이 있다.
5년 전 뉴질랜드에 머물 때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타이완 사람이 세놓은 집에 살게 되었다. 집주인은 매우 친절하고 자상했다. 알고 보니 그는 한국 드라마를 즐기고 한국 음식을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주 우리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그런데 오라고 한 시간에 맞춰 가보면 대부분, 음식 냄새는커녕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집안이 조용했다. 부인은 그제야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구경하게 된 중국 만두는 의외로 만드는 법이 간단했다. 사온 재료에 얼음을 넣고 대꼬챙이로 휘휘 저어 속을 만들고 만두피는 남자 주인이 빚었다. 커다란 방망이로 만두피를 빚는 주인의 솜씨가 능수능란하여 만두는 어느 결에 뚝딱 완성이 되었다.
손님을 초대하면 주로 여자 혼자 적어도 두어 시간, 많게는 하루 종일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우리와는 달랐다. 가짓수가 많고 손도 많이 가기에 우선 시간이 많이 들고, 맛을 내기 위해선 정성이 빠질 수 없는 우리 음식. 나는 가끔 김치를 그 집에 가져갔는데 가져간 김치는 금세 동이 나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늘 김치를 더 먹고 싶어했다.
뉴질랜드 사람들 집에 초대되어 가보면 대부분이 바비큐 파티였다. 사온 재료를 그냥 불에 익혀 먹는 그곳에서도 음식을 만드는 데 들여야 할 수고는 별로 없었다. 고기는 남편이 굽고 부인은 예쁘게 차려입고 앉아서 서빙 받고 수다 떨면 그만이었다.
도시락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이들은 점심으로 학교에 과자 한 봉지를 들고 가거나 자판기에서 인스턴트 음식을 사먹었다. 어쩌다 우리 아이가 김밥을 학교에 싸가는 날엔 배를 곯고 오기가 일쑤였다. 반 친구들이 '캔 아이 해브 원?' 하며 계속 김밥을 원한다고 했다.
만일 같은 재료로 요리를 한다면, 예를 들어 가지라면 중국 사람은 턱턱 썰어 기름에 볶을 것이고, 서양 사람은 숭덩숭덩 썰어 오븐에 넣거나 생으로 먹을 것이고, 우리는 살짝 쪄서 결대로 찢은 다음 알맞게 짜서 갖은 양념 조물조물.
세계인들이 감동한 것은 정성의 맛이다. 태중처럼 따뜻하고 안온한 느낌을 주는 우리 음식. 한식에는 그 옛날 넉넉지 못한 재료를 사용해 식구들에게 맛깔스러운 음식을 만들어주고자 한 어머니들의 눈물겨운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나의 게으름을 일으키는 힘도 근원적으로는 그것을 먹고픈 마음이 아닌가 싶다.
백옥경경북도립구미도서관 느티나무독서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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