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지도자 자질론을 새삼 언급해 정치적 파장이 일고 있다. 원론적 발언으로 풀이될 수도 있지만 여야 간, 당내 계파 간 '세종시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이란 점에서 차기 대권과 관련한 복심을 드러낸 게 아니냐는 해석이 많다.
이 대통령은 9일 청주 충북도청에서 도 업무보고를 받으며 "저는 솔직히 말하면 일 잘하는 사람을 밀고 싶어 한다"며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판단하고, 계산하고, 생각하면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지난 다보스포럼에서 만난 외국 정상의 충고를 전하며 "지방이든 중앙이든 책임자는 사고가 유연해야 한다. 항상 미래지향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 지도자가 그런 덕목을 갖춰야 국가가, 지역이 발전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세계는) 서로 살아남으려는 전쟁을 하고 있는 것과 같다. 우리끼리 싸울 시간도 없고 여력도 없다"며 "세계와의 전쟁이기 때문에 이기려면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잘되는 집안은 강도가 오면 싸우다가도 멈추고 강도를 물리치고 다시 싸운다. 강도가 왔는데도 너 죽고 나 죽자 하면 둘 다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강도론'을 제기, 눈길을 끌었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표면적으로는 그동안 강조해온 '실용·중도' '세계 선도 국가'와 맞물려 있다. 이 대통령은 5일 경기도 업무보고에선 "경상도는 크게 흥했던 경주와 상주의 이름을 빌려온 것인데, 상주는 시끄러운 철도가 지역을 지나가서는 안 된다고 해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 한때의 결정 때문에 발전이 지체됐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의 이날 언급이 세종시를 둘러싸고 날카롭게 각을 세우고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자질'을 지적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세종시 논란이 계속되는 데 대한 서운하고, 답답한 마음이 담긴 듯 보인다.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은 이와 관련, "박 전 대표를 겨냥한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위기 극복을 위해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대국민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지, 특정 정치인이나 세종시에 국한해서 하신 말씀은 아니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세종시 수정안 발표 이후 처음으로 충북을 찾은 이 대통령은 이날 '세종시'를 직접 언급하며 우호적 여론 확산에도 주력했다. 이 대통령은 "세종시가 들어서서 과학비즈니스벨트가 형성되면 충북이 가장 큰 수혜 지역이 될 것"이라며 "국토의 중심에 있다기보다 발전의 중심에 서자는 충북의 사고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치켜세웠다. 아울러 충북도가 건의한 오창·오송 지역의 경제자유구역 지정, 청주공항 활성화, 청주-천안 전철 연결 등 숙원사업에 대해서도 적극적 지원을 약속해 향후 여론 움직임이 주목된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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