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농담의 세계/조중의 지음/휴먼 앤 북스 펴냄

입력 2010-02-10 08:43:32

위선'타락 판치는 선거판에 '뻥' 걸기

(가상의 도시)동주시는 기상 이변으로 가뭄과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지방 선거가 며칠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현직 시장인 이수는 기상 이변이 선거에 미칠 영향 때문에 노심초사한다. 그 와중에 이 지방 경찰서장은 상대당인 보수우파당 조팔개 후보를 지지해 이수와 대립한다.

폭염으로 강물이 바짝 마르고, 구십천에 이무기 주검이 등장한다. 처음에 사람들은 그것이 거대한 물고기인 줄 알았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90명이 매달려 굴속에서 끌어내고 보니 거대한 이무기 주검이었다.

이무기가 발견된 곳은 평소 사람들이 신성하다고 믿던 물속이었다. 물이 바짝 마른 그곳에는 신성한 이무기와 더불어 콜라병, 깡통, 생리대, 플라스틱 찌꺼기 등 온갖 오물들이 가라앉아 있다. 사람들은 이무기의 주검을 두고 '곧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라며 걱정한다.

소설 '농담의 세계'에는 현실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상황들이 펼쳐진다. 길이 20m가 넘는 이무기의 주검, 그것의 꼬리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어영차 어영차 구슬땀을 흘리며 당기는 시민들, 단순무식하게 자존심과 의리만 챙기는 폭력배 용가리, 죽은 사람이 장례식 날 유령이 돼 벌떡 일어나고, 나무가 사람을 잡아먹고, 선거판은 돈과 테러, 부정과 음모, 욕망과 욕심이 난무한다.

소설은 선거 한복판의 이전투구에 관한 이야기다. 위선과 허위, 일탈과 타락은 정직과 진실의 세계를 집요하게 허문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허구다. 허구이지만 가능한 사실처럼 보이도록 쓰는 게 소설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단 몇 페이지만 읽어보아도 허구 중에 허구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다. 이른바 '뻥을 쳐도 교묘하게, 그럴듯하게 치는 게 아니라 뻥임이 금세 드러나는' 것이다.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작가는 '뻥임이 명백한 허구'를 통해 불편한 진실을 알리고 싶은 것이다. 이처럼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장면들이 결국 현실의 장면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정치판에서는 20m가 넘는 이무기 주검이나 사람 잡아 먹는 나무, 유령이 아니라 더한 것도 얼마든지 나오지 않는가. 그것들은 그럴싸해서 '사실인지 아닌지 모호한 모습'을 띠고 있을 뿐이다. 최근에 치른 대통령 선거, 그 앞 대통령 선거에서도 갖가지 음모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들은 얼마든지 떠돌았다.

소설 속 동주시는 분명히 판타지의 세계, 농담의 세계다. 그러나 그 속에서 인물들이 펼치는 유려한 이야기는 명백한 '현실카피'에 다름 아니다. 한발 물러나 소설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속내가 뻔히 보이는 그들의 거짓말과 음모에 그저 웃을 뿐이다. 그러나 실제 선거전에서, 그 선거전의 한복판에 서 있는 유권자의 입장에서도 그렇게 웃을 만큼 여유를 가지고 상황을 바라볼 수 있을까?

지은이는 어쩌면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내 소설이 농담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그렇다면 당신들이 핏대 올리며 치르는 선거에서 듣고 보는 것 역시 말도 안 되는 소리, 웃기는 농담일 뿐이다."

지은이의 거침없는 필담과 입담, 속도감 있는 상황전개, 가볍게 넘어가는 이야기들은 경쾌하고 유쾌하다. 그러나 이 책장을 덮고 음미하면, 지은이의 농담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것이 곧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이기 때문이다.

현실 정치와 선거에 염증을 느끼는 독자,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자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요즘 소설에 지친 독자라면 흥미를 느낄 만하다. 지은이 조중의는 199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324쪽, 1만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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