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 조국에 배신당한 두 남자의 '동상이몽'
70년대식 고풍스런 제목을 단 '의형제'는 대단히 힘이 넘치고, 페이스 조절이 뛰어난, 잘 만든 영화다. 줄거리에 설핏 들어서는 과거 '국책 반공 영화'의 그림자가 어른거리지만 현대적인 세련미가 넘치고, 홍콩 누아르풍이 오버랩되지만 한국적인 정서와 이해관계로 뭉쳐져 있다.
아내와 딸을 북에 두고 내려온 남파간첩 지원(강동원)은 배신자를 처단하라는 지령을 받고, 잔혹한 킬러 그림자(전국환)와 함께 암살에 나선다. 이번 일만 순조롭게 끝나면 북으로 돌아가 가족과 재회할 기대에 부풀어 있다.
암살 순간에 한규(송강호)가 이끄는 국정원 요원들이 들이닥친다. 그러나 뛰어난 지원은 유유히 사라지고, 한규는 추격전 끝에 그림자도 놓치고 만다. 동료를 잃고 작전에 실패한 한규는 해고되고, 지원도 배신자로 낙인 찍혀 외톨이 신세가 된다.
6년 후. 한규는 도망간 베트남 아내를 찾아주는 흥신소를 운영하고, 지원은 공사장 인부로 다시 만난다. 첫 눈에 서로를 알아보지만 신분을 숨긴 채 흥신소 일을 함께한다. 한규는 간첩단을 검거해 한몫 잡겠다는 속뜻으로, 지원은 한규를 통해 다시 신임을 얻어 북으로 돌아가려는 속셈으로 한 집에서 긴장된 동거를 시작한다.
'의형제'는 한때 적이었지만 뜨거운 가슴으로 소통하는 남파 간첩과 국정원 요원의 단독강화(單獨講和)를 드라마틱하게 그려낸 버디 무비다. 조국과 조직, 신념이란 차가운 이성을 녹여내는 의리와 감성의 융해 과정이 강약, 완급의 절묘한 조절로 관객을 쥐락펴락한다.
거창한 이념의 수레바퀴 속에 놓여 있지만 간첩이든 국정원 요원이든 돌아서면 누구의 남편과 아빠로 돌아간다. 그것은 형제애라는 기본적인 귀환점과도 맞닿아 있다. 그래서 영화는 남북의 갈등과 대치보다 서로 다른 두 남자의 앙상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자는 이 앙상블을 위한 전채 음식에 불과하고, 조직으로부터 버려진 둘이 돌아가야 할 곳은 가족이다.
북에 두고 온 지원의 아내와 딸은 오매불망 그를 기다리고 있지만, 한규의 아내와 딸은 이혼 후 외국으로 떠나버렸다. 남북의 숙명과 현실을 영화는 등장 인물들의 조합으로 은유하고 있다.
'의형제'는 '영화는 영화다'를 통해 인상적인 연출력을 보여준 장훈 감독의 작품이다. '영화는 영화다'는 입소문으로 관객 130만명을 동원했다. '의형제'에서도 관객에게 영합하지 않으면서 정확한 포인트 공략으로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있다.
서울 주택가의 좁은 골목 사이에서 벌어지는 추격신과 총격전, 베트남 아내를 두고 벌이는 옥신각신, 집에서 벌어지는 사소하면서도 우스운 에피소드 등 긴장과 웃음, 서정적인 감정의 흐름이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무거우면서 가볍고, 차가우면서 따뜻하고, 판에 박힌 듯하면서도 독창적인 묘한 힘이 느껴진다.
특히 송강호는 '연기의 종합선물세트'라는 감독의 표현대로 몸개그는 물론이고 어이없을 때 터지는 해학적 대사, 감정을 숨긴 연민의 표정 등 다채로운 연기를 보여준다. '우아한 세계'나 '밀양', '괴물' 등에서 익히 본 '송강호표' 연기지만, '의형제'에서는 더욱 기가 막히게 버무려낸다.
그림자역의 전국환은 냉혹한 킬러로 카리스마를 내뿜고, '영화는 영화다'에서 감독역을 했던 고창석은 베트남갱 보스역으로 감칠맛 나는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전우치'에서 좌충우돌 코믹 히어로역을 한 강동원도 차가운 이미지의 지원역을 무난하게 소화하고 있다.
그러나 적절하고 타당한 긴장감으로 일관하던 이 영화는 극의 마지막에 맥을 놓는 우를 범한다. 불필요한 에필로그는 말 그대로 사족이 되고 말았다. 해피엔딩에 대한 함정에 스스로 포획된 느낌이다.
그럼에도 '의형제'는 '아바타'가 평정한 극장가에 한국적 정서를 잘 담아낸 완성도 높은 영화이다. 어이없는 해피엔딩 또한 관객에 대한 친절한 애프터서비스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김중기 객원기자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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