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재래시장

입력 2010-02-06 07:09:47

흥정없이 무슨 재미…물건 사는 맛에 '살 맛'까지 챙겨와

#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원고지 3~5매 정도의 분량으로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글을 보내주신 분 중 한 분을 뽑아 패션 아울렛 올브랜 10만원 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많은 사연 부탁드립니다.

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체육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김순희(대구 북구 구암동)

다음 주 글감은 '겨울 여행'입니다.

♥ 눈에 가득 담아 오는 것 만으로도 흡족

시장엘 가면 무엇이든 풍성하고 막상 사가지고 오지 않아도 눈에 그득 담아 오는 것만으로 흡족함을 느낀다. 물건을 살 때 단돈 몇 푼이라도 깎아 주거나 한 개씩 덤으로 더 받아 올 땐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시장 가기를 싫어하는 이가 있을까마는 나 역시 시장 가기를 즐겨한다.

시장 중간쯤엔 항상 발 장단에 맞춰 손바닥을 치며 "골라! 골라!"를 외치는 아저씨의 노래아닌 노래에도 귀가 솔깃해 괜히 물건을 한번 만져 보기도 한다. 그 아저씨의 목청이 잠시라도 쉬고 있으면 시장안의 흥겨움은 덜 한 것 같다. 이맘때가 되면 시장 입구에서부터 "뻥이요" 하고 외치던 소리가 그리워진다.

오래전 시장 풍경도 생각난다. 하얀 저고리에 검정 깡뚱 치마를 입고 앞머리는 자로 대고 자른 것 같은 단발머리 여자 아이나 코를 훌쩍이며 빡빡 민 머리에 하얀 밀가루를 씌운 듯한 머슴애나 모두들 양쪽 검지를 귓속에 넣고 두 눈은 꼭 감은 채 '뻥'소리를 기다리고 있다.

어느 날, 옆집 친구가 새 고무신을 샀다고 자랑을 했다. 나도 사달라고 졸랐지만 가정형편상 어림없는 소리였다. 난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양지쪽으로 가 한참을 고무신에 햇볕을 받게 한 뒤 뜨거움에 말랑말랑해진 고무신 코를 쪽 찢었다.

어머니는 실로 꿰매어 주신다고 바늘과 굵은 명주실을 갖고 오셨다. 실로 꿰맨 신발을 신을 생각에 창피함과 괜히 한 짓에 후회하며 울었다. 우는 애 젖 준다고 시장 신발 가게로 데리고 가셨다. 고무신이 구두로 흐른 세월. 문득 구두 가게 앞을 지나다 보면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김명수(대구 달성군 현풍면)

♥ 고교 입학식날 아버지와 돼지국밥

내가 서문시장을 처음 찾은 때는 고등학교 입학식 날이었다. 산골 외진 마을에 살던 내가 대구시내 모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자 도회지 낯선 땅에서 길을 잃을까 염려스러웠던지 아니면 대견해서인지 하여간 아버지는 지금까지의 전례를 깨고 입학식에 참석하셨고 입학식이 끝나자 아버지께서는 나를 이끌어 곧바로 서문시장을 찾았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넘쳐나는 인파 속에서 행여 아버지의 그림자를 잃어버릴까 조바심이 나 시종 종종걸음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앞서가던 아버지께서 옷가게 하나를 골라 들어섰고, 이리저리 옷 두어 벌을 골라 주인과 흥정을 시작했다. 당시 아버지가 주인과 벌이는 흥정을 볼 때 아들이기 이전에 아버지의 흥정이 순억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주인이 "8천원" 하면 아버지께서는 거두절미 반을 딱 잘라서 4천원에 흥정을 하셨다. 그 흥정은 끝을 보지 못하고 깨어졌고 흥정이 깨어지자 아버지도 당연히 그리 되리라 예상하셨던지 선선히 가게를 물러나 나를 이끌어 근처 국수집을 찾아 들었다.

난전 국수를 먹고 나서 아버지는 다시 아까 그 옷가게로 가 천원을 더 얹은 5천원에 흥정을 마무리하고 두 벌을 한꺼번에 달라고 하자 주인 아주머니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그 옛날 아버지와 찾았던 전통시장의 돼지국밥집에서는 지금도 흥정 아닌 인심이 넘쳐 난다. 퇴근 직후 주린 배에 안주 한 접시는 젓가락질 몇 번에 순식간 비워지고 두어 잔 따른 술병에 남은 술이 걱정스러워질 즈음 "나도 술 한 잔 줘봐!" 하는 주인 아주머니의 말에 소주 한잔을 권할라치면 "안주 꼬락서니하고는 염병할! 간에 귀때기 살 좀 삐져 줘!" 하는 훈훈한 인심뿐만 아니라 덤과 흥정이 있어서 나는 이래저래 재래시장이 좋다. 이번 설 대목에는 아내를 앞세워 집 가까운 목련시장에 들러 한판 흥정을 벌여보리라 생각해본다.

이원선(대구 수성구 중동)

♥ 아이들과 나들이…추억 쌓기에 최고

나는 전통시장에 간다. 어린 시절 엄마 손잡고 시장 갔던 추억이 좋아 가고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간의 흥정하는 소리, 왁자지껄한 소리가 정겨워 간다. 요즘 대형 소매점에 손님을 빼앗기고 끝도 없이 추락하는 경기 불황으로 인해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전통시장이 안타까워 간다.

그러다 단골이 되다 보면 덤으로 좀 더 얻거나 물건 사면서 10여분 정도는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한 전통시장에 간다.

늘 바빠 대화가 단절됐다 싶을 때 큰딸을 데리고 자주 시장을 찾는데 카트를 끌고 편안하게 장을 보자며 투덜거리는 큰딸에게 전통시장에서 파는 호떡이랑 떡볶이, 국화빵을 미끼로 던지면 그 투덜거리는 입이 쏙 들어가 버린다.

전통시장에서 보낸 시간들은 그냥 장보기 위함이 아니라 큰딸과 함께 보낸 소소한 작은 추억이 된다. 어린 시절 내가 그랬듯이. 오늘도 나는 전통시장에 간다.

이틀만 지나면 휴가 나오는 막내 아들에게 푸짐하고 정성이 가득한 밥을 해 주기 위해 이것저것 사가지고 와야겠다. 그동안 고생했을 아들에게 전통시장에서 파는 싱싱하고 정겨운 반찬들로 기운을 돋우어 줄 생각이다. 나는 전통시장에 간다. 나는 전통시장이 참 좋다.

조귀연(대구 북구 고성3가)

♥ 물건 고르다 출출할때 주전부리 맛 그만

설을 앞두고 시장이 모처럼 활기차고 웃음으로 넘친다. 생선 가게 앞에는 손님들이 줄을 지어 서로 가장 좋은 놈을 고르느라 연방 아래위를 살펴본다. 건어물 가게에도 사람들로 붐비고 그릇 가게에는 차례상과 소쿠리가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다. 공원 앞 공터에는 서민의 주전부리인 강정 만들기가 한창이고 호루라기와 함께 뻥튀기 소리가 요란스럽다. 떡집들은 며칠째 밤샘을 해가며 형형색색의 가래떡들이 뜨거운 김을 몰아낸다. 과일가게 '털보 아제'는 인심 좋게 덤도 준다.

주위에 대형 소매점이 들어와 소상인들의 울분이 하늘을 찌르더니 그나마 명절 때는 노곤함도 잊어 주는 행복한 웃음이 곳곳마다 묻어나 기분들이 좋아 보인다. 전통시장이라 일컬으면 최고로 손꼽히는 게 먹을거리와 볼거리, 재밋거리다. 물건을 고르다가 출출하면 입맛 당기는 주전부리 앞으로 모여든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과 호떡, 순대, 붕어빵, 떡볶이가 먹음직스럽게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요즘 각광받고 있는 빈대떡과 막걸리 붐으로 인해 먹자골목은 활기차고 힘이 난다.

지금 전통시장은 정말 살맛나는 세상이다. 명절뿐만 아니고 평소에도 이렇게 사람들로 붐비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바람도 해본다. 시장 상인 여러분! 힘내시고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게 삽시다. 파이팅!

윤선주(대구 달서구 신당동)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