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열세 달을 일하는 여자
우리나라 대졸 이상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OECD 최하위 수준이라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자녀출산과 양육기에 대규모 노동이탈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어렵게 얻은 직장을,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대체 무엇일까? 모성보호와 자녀양육을 위한 사회적 배려와 제도적 뒷받침이 매우 부족한 우리 사회에서 일하는 엄마들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별로 없을 것이다.
미국 버클리대 알리 러셀 혹실드 교수는 미국의 맞벌이 가정에 직접 들어가 관찰하고 조사한 바를 책으로 내어 큰 화제를 모았다. 자신도 연구실에 젖먹이를 데려다놓고 근무한 경험을 갖고 있는 저자는 1976년부터 1988년까지 열두 가정에 직접 들어가서 그들의 생활을 지켜보고, 50쌍의 부부를 집중적으로 인터뷰하면서 무려 12년에 걸쳐서 연구를 진행했다.
저자의 연구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유형은 다양하다. 가사분담 문제로 끊임없이 갈등하다가 아내는 살림과 육아를, 남편은 개를 돌보는 것으로 집안일을 공평하게(?) 나눈 낸시와 에반 홀트 부부. 아내보다 승진도 늦고 연봉도 적게 받아 기가 죽은 남편과 말썽을 일으키는 딸을 보면서 직장을 그만둘지 말지 고민하는 니나와 피터 타나가와 부부. 가사분담 협상에 지친 나머지 일손을 돈으로 사서 가사와 육아를 해결하며 애정없는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변호사 부부 제시카와 세스 스타인. 출산 이후 육아와 직장 일에만 매달려 남편에게 소홀해진 아내, 남편은 아내를 돕고 싶어 하지만 아내가 틈을 주지 않는 바바라와 존 리빙스턴 부부. 연구대상이 된 부부 중 일부는 연구가 진행되는 중에 별거하거나 이혼한다. 반면 좀 다른 부부도 있다. '가사분담을 안 하면 이혼하겠다'며 아내가 가출한 사건을 계기로 가사와 육아를 분담하는 아드린느와 마이클 셔먼 부부는 둘 다 직장 일을 줄이려고 애쓴다.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며 열성적으로 가사와 육아에 참여하는 아트 같은 남편도 있다.
미국의 한 연구에 의하면, 남자들이 하루 평균 17분 동안 집안일을 하는 반면, 일하는 여성들은 평균 3시간 집안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동구와 서구 유럽의 11개 산업 국가에서도 일하는 여성과 일하는 남성 간의 이 같은 차이는 거의 같게 나타났다. 육아에 소요되는 시간을 합산하여 평균을 낸 록실드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이 남성보다 1년이면 한 달 더, 12년이면 1년 더 일하는 셈이 된다고 한다. 직장에서 남녀 간에 임금 격차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정에서는 부부간에 '여가시간의 격차'가 존재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종일 일하고 집에 와서 또 일했다. 일하는 엄마들은 전업주부에 비해 자긍심이 높고 우울증에 덜 걸리는 반면, 남편보다 더 피곤해하고 더 자주 앓았다. 많은 엄마들은 집안일과 직장일 사이에서, 놀이방에 아이를 떼놓고 갈 때 아이의 두려움을 달래줄 필요와 직장에서 상사에게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줄 필요 사이에서 분열을 느끼고 있었다. 아빠보다는 엄마가 자신이 부모 노릇을 잘 하고 있는지 더 깊이 고민했고, 자신의 포부를 실현하는 삶과 그것을 포기한 삶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떨까? 미혼남성의 대다수가 직장이 있는 여성을 배우자로 맞기를 원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 남성들이 일하는 아내와 조화롭게 살아갈 심리적 준비까지 갖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남성들의 역할은 '도와준다'는 차원의 단순 조력자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육아에서도 일차부모의 역할을 하는 경우는 드물고, 방관적이고 소극적인 자세를 취한다. 또한 여성들은 평등적인 여성을 꿈꾸면서도 전통적인 여성의 껍질을 벗어나지 못하는 과도주의 유형이 다수를 차지할 것이다. 혹실드가 만나본 남녀들도 대부분 '과도적 유형'이었다고 한다. 한국의 많은 부부들이 이 책을 읽고 관계의 변화를 꿈꾸었으면 좋겠다.
신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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