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편한게 제일이제"…두산리 최고령 신출이 할머니

입력 2010-02-01 09:47:42

95세 신출이 할머니(왼쪽)와 아들 이덕로씨. 이채근기자
95세 신출이 할머니(왼쪽)와 아들 이덕로씨. 이채근기자

빛바랜 흑백사진. 수십년 전 기억을 더듬는다. 사진 속 앳된 모습이 어제 일처럼 느껴진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고 없는 남편과 큰아들이 수줍은 듯 서 있다.

"큰애가 살았으면 올해 72세야. 10년 전에 당뇨로 먼저 갔어." 졸수(卒壽·90세)를 훌쩍 넘긴 신출이(95) 할머니는 남편과 아들 모습이 담긴 사진을 어루만진다. "영감 따라 일본에 갔다가 찍은 사진이야." 65년 전 찍은 사진도, 죽은 아들 나이도 잊지 않을 만큼 맑은 기억력이다.

넷째 아들 이덕로(61)씨는 옆에서 웃기만 한다. 윗옷을 주섬주섬 챙기던 할머니는 허리를 곧게 세우고, 덕로씨와 함께 마루에 걸터앉는다. 모처럼 볕이 따스하다. 고구마처럼 생긴 산약을 깎더니 한입 베어 문다. "동네 사람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서 산약과 산나물을 가져다줘." 산약은 날 것으로 먹기도 하고 잘게 빻아 찌개를 끓일 때 한 숟가락씩 넣기도 한다.

할머니는 슬하에 8남매(아들6, 딸2)를 뒀다. 모두 효심이 지극하다. "몸에 좋다는 찬거리를 아이들이 서울에서 직접 가지고 와" 특히 덕로씨는 아버지가 세상을 뜬 뒤 23년째 어머니 곁을 지키고 있다. "효자야. 조금 모자란 구석은 있지만 마음 씀씀이는 얼마나 영리한지…."

덕로씨는 흔히 말하는 정신지체인이지만 집안 가사에는 달인이다. 빨래, 밥, 청소 등 무엇 하나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세탁기 사용법과 밥하는 법은 형수에게 배웠단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는다. 먼지 한 톨 찾을 수 없다. "테레비에서 봤어. 깨끗해야 엄마가 오래 산데." 덕로씨가 해맑게 웃는다.

할머니는 평소에 욕심이 없다. 아들 남매를 잘 키웠고 독실한 신앙생활로 마음이 편안하다. 밥도 끼니마다 잘 드신다. 육류보다는 채소를 즐겨 잡수시고 잠도 9시간 이상 푹 주무신다. 고령의 나이에도 70대 못지않은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다. "장수비결이 따로 있나? 공기 좋은 곳에서 마음 편하게 사는 게 제일이지." 임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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