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미술 산책] 겨울풍경(고산골 부근)

입력 2010-01-30 07:40:00

신산하고 질박한 민중의 삶 함축적으로 묘사

겨울풍경(고산골 부근)

작가 : 김우조(金禹祚 1923~)

제작연도 : 1969년

재료 : 목판(창호지·베니어판·포스트 컬러)

크기 : 59.7 × 90㎝

소장 : 작가

날카로운 나뭇가지들이 복잡하게 얽혀 빽빽이 들어찬 모습이 메마르고 거친 겨울 자연의 파삭한 기운을 한층 북돋운다. 우거지고 무성할 때 수목의 농밀함과는 정반대의 서정을 자아내는 이 풍경화는 단색 목판화로 제작되었다. 톤의 변화가 없는 목판화는 자연히 명암법에 의한 양감표현에 제약이 따르고 원근감을 나타내는 데도 한계가 있다. 유화나 수채화에 비해 제작기술과 재료에 따른 저항이 커 사실감도 제대로 나타내기 힘들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전체적인 인상은 마치 아라베스크 무늬가 주는 느낌처럼 평면성에 가깝다. 이런 특징은 구체적인 형상들을 묘사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상투적인 재현주의를 벗어난 새로운 미적 감각을 제시할 수 있게 했다. 많은 예술가들이 진부함을 타개하는 수단으로 재료나 기법 혹은 매체를 바꿔보기도 하는데 이 작가는 판화의 방식을 통해 평범한 내용을 참신한 표현으로 변신시켜 놓았다.

눈앞을 가로막듯 바싹 다가선 전경의 나무 한 그루를 강하게 부각시켜 화면의 분위기를 압도하지만 가운데를 조금 비켜나 있어 시야를 열어준다. 안쪽으로 향하게 되는 시선은 듬성듬성 서있는 나무들 사이를 통과해 오두막 같은 집 한 채에 이른다. 그 뒤로는 둥글고 불퉁한 산언덕에 막혀 더 이상 원근감을 형성하지 못하고 닫혀버린 구도다. 하늘만이 유일하게 공간을 틔워주지만 탁 트인 전망이 없어 일견 답답해 보일 소재다. 아마도 골짜기를 오르다 만났을 한 장면인 이 그림의 매력은 역설적이지만 작위적이지 않아 보이고 그 어떤 아첨도 없는 화면구성에서 나온다. 감상자의 눈에 들고자하든가 공감을 얻으려는 목적은 흔히 예술작품으로서는 실패하기 마련이다. 남을 의식한 그림은 자연스러움을 잃어버리고 관객이 누려야 할 새로운 발견의 기쁨이나 예기치 못한 것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는 격이 된다.

지역 원로화가인 김우조는 이미 조선미전에 수채화로 입선한 경력에서부터 유화는 물론 한때 사진 활동과 또 조각이나 공예나 무엇이든 만지고 다듬는 창작행위 자체를 즐기는 작가다. 다양한 장르의 기량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주된 작업이 판화 매체로 이루어지게 된 것에는 실존적인 이유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말기와 해방공간 그리고 6·25전쟁 등 어려운 시기 캔버스와 물감을 구하기 힘든 사회적 상황이 판화 장르를 주목하게 했다. 또 하나는 해인사에서 전통 목판인쇄술의 역사성과 거기에 결부된 우리 고유의 미의식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는 한국현대판화의 조형이념이나 단체 활동과는 무관하게 독자적인 미학을 추구해왔는데 바로 이 그림에서 보듯 신산하고 질박한 민중적 삶의 정서가 함축적으로 녹아있는 담백한 구상세계를 펼쳤다. 칼로 새긴 자국이 내는 목판화 특유의 맛과 판이나 종이 등의 재질이 인쇄될 때 만드는 흔적이 작가의 이런 개성과 잘 조화되어 드러난다. 바탕 판목도 베니어 같은 값싼 재료를 사용했고, 대개 A.P(일련번호를 매기지 않고 작가가 참고용으로 찍은 것)라고 적은 소량만 남긴다. 그림 내에 연필로 연도와 서명을 써넣어 자신의 진작임을 표시했다. 김영동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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