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고원을 품에 안은 깃대봉, '부유한 산' 별칭에 제격
659m 높이의 사룡산 분기봉을 지난 낙동정맥은 시루미기 마을 직후 해발 475m쯤 되는 '숙재'로 180m나 떨어진다. 그리고는 다시 250m가량 치솟으며 716m봉-731m봉-711m봉 능선으로 올라섰다가, 639m재로 꺾임으로써 일단 한 산덩이를 구획한다.
그 구간에서 무엇보다 답사객을 당황케 하는 것은 '숙재'다. 그 이름이 뭘 의미하는지 짚이지 않아서다. 떡 해 먹는 쑥이 많이 나서 혹시 '쑥재'인지, 아니면 땔감인 숯과 관련돼 '숯재'라는 말인지… 궁리에 궁리가 꼬리를 문다. 민간 지도들이 더러 '숲재'라 표기하는 것도 그런 당혹감의 결과일 테다.
하나 현지 주민들은 모두에 고개를 흔들었다. 경주 서면 천촌리와 산내면 우라리 등 재 양편을 다 다녀 봐도 틀림없이 '숙재'라 했다. 그러면서도 "예부터 내려온 이름일 뿐 유래는 모른다"고 했다. 기껏 들을 수 있은 것은 "고지대인 우라리서 낮은 아화 쪽으로 숙진다고 숙재라 했을지 모른다"는 짐작 정도였다.
어쨌든 그 이름은 숙재로 확인됐다. 한자로는 '淑嶺'(숙령)이라 쓴다고 했다. 그 재에서 천촌리 쪽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지나는 골 이름도 '숙골'이었다. 거기 있는 저수지는 '숙곡지'라 했다. 재 이름 혼란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경주시청이 속히 나서서 표지판을 만들어 세워야겠다.
숙재 연결로는 잘 나 있다. 북편 천촌리 쪽 길은 가파르거나 길지 않고 골 안 마을들은 안정감이 있다. 남편 우라리 쪽으로도 길을 따라 마을이 끊이지 않는다. 다만 그 아래 내칠리~신원리 사이 도로가 부실해 지금 한창 확장 공사 중이다.
정맥은 숙재에서 716m봉-731m봉-711m봉 능선을 향해 다시 250m가량 치솟는다고 했지만, 실제 716m봉에 걸어 오르는 데는 30분이면 족하다. 거기로 나 있는 임도를 따라 주위를 구경해 가며 올라도 40분이면 된다. 길만 잘 잡으면 716m봉서 갈라져 나간 산줄기 상의 오봉산 '주사암'까지도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다.
이렇게 오르는 716m봉-731m봉-711m봉 능선은 사적25호 '부산성'(富山城) 성벽 구간이다. 716m봉을 시점(始點)으로 해 동으로 뻗어나간 '오봉산' 지릉(支稜) 위로 성벽이 쌓였다. 남으로 731m봉을 거쳐 711m봉까지 이어가는 정맥 상에도 그렇다. 마지막 711m봉서 굽어 오봉산 쪽으로 가는 산줄기에는 나머지가 축성돼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부산성 성내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산덩이로 구성돼 있다. 731m봉을 중심으로 한 정맥 구간 덩어리와, 최고 높이가 633m인 오봉산 덩어리가 그것이다. 둘은 높이에서 무려 100m나 차이 날 뿐 아니라 그 사이가 해발 520m까지 낮아진 재에 의해 갈려 있기도 하다. 재에는 그 서편 경주 서면 천촌리로 연결되는 '산성고개'가 있을 정도다.
그 중 731m봉을 우라리 상리마을 어르신은 '기통배기'라 불렀다. 예로부터 거기 깃발을 꽂아 그런 이름이 전해진다고 했다. 요즘말로 하면 '깃대봉'쯤 되는 셈이다.
거기서 제법 떨어져 있는 '오봉산'은, 추측건대 봉우리가 다섯이라고 해서 그 이름이 붙었다. 그런 모습이 닭의 벼슬을 닮았다고 해서 별칭이 '닭벼슬산'이다. 꼭대기에 주암(朱巖)이라는 눈길 끄는 암괴가 있어 '주사산'이라고도 불리게 됐다. 주암에 얽힌 붉은 모래 전설에 바탕해 그 아래 절 이름도 '주사암'(朱砂菴)이다. 말하자면 오봉산이 닭벼슬산이고 주사산이다.
이렇게 사안이 명료해 보이는데도 현장서는 혼란이 심하다. 우선 '경주일요산악회'서 1992년 세웠다는 정상석(頂上石)은 오봉산 최고점 높이를 685m로 적어 놓고 있다. 무려 52m나 틀렸다.
그 633m 오봉산이 주사산임이 확실해 보이건만 국가 공식지도는 전혀 다른 걸 주사산이라고 짚는다. 깃대봉과 오봉산 연결 능선에 541m봉과 563m봉이 있는바, 1대 5,000 지형도는 앞의 것, 1대 25,000지형도는 뒤 것을 '주사산'이라 지목하는 것이다.
오봉산 덩어리는 작고 낮다. 그 비탈에는 산성 시설이 들어설 기슭이 거의 없다. 반면 깃대봉 덩어리는 높고 클 뿐 아니라 넓은 고원을 품고 있다. 성내 면적의 대부분이 그 경사면에 속한다. 그래서 자연스레 드는 생각이, 옛날 '부산'이라 부른 게 바로 이 산덩이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 품에 저렇게 넓고 평평한 터전을 품고 있으니 '부유한 산'에 제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현지 부산성 안내판도 '부산의 높이는 729.5m'라고 알리고 있다. 일대에 그 높이에 가까운 것이라곤 731m 깃대봉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부산'의 높이를 제대로 설명하던 현지 안내판이 어느 순간 갑자기 혼란에 빠져 '부산은 주사산 오봉산 닭벼슬산이라고도 한다'고 설명해 버린다. 결국엔 둘을 구분 못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만다는 얘기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낙동정맥은 639m재로 추락해 '부산(富山) 덩어리'를 구획 지은 뒤, 다시 120여m 솟아 760m봉으로 높아진다. 우라리 상리마을에서는 이걸 '병풍(골)산'이라 지칭했다. 지나온 지경재서 앞으로 갈 당고개 사이 하룻길 산줄기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정맥 흐름이 그걸 정점으로 북서는 해발 100m(지경재), 남동은 315m(당고개)까지 낮아져 별개의 산덩이로 구분될 정도다.
-- (부속박스)
낙동정맥은 병풍산에서 당고개를 향해 동편으로 굽어 가기 전, 서편으로 '석두능선'이라 부를 만한 큰 산줄기를 하나 남겨놓는다. 우라리 마을 등이 분포하는 '직현천계곡'의 동편 울타리 격 능선이다. 사룡산서 뻗어 내려 직현천의 서편 울타리가 되는 '장륙능선'과 짝을 이루는 셈이다.
그 능선에 일대 제일 높은 775m봉이 솟았다. 낙동정맥 본줄기에선 병풍산(760m)이 높으나 지맥까지 합치면 이게 최고다. 인근서 갈라져 출발하는 비슬기맥에서도 비슬산 본체 외엔 이보다 높은 봉우리가 없을 정도다.
그렇지만 775m봉과 인접 봉우리들 이름은 지도에 나타나지 않는다. 일대가 잊혀진 지형이 된 것이다. 그냥 둬 버리면 얼마 안 가 영영 지명 없는 산줄기가 될지 모른다. 거기는 그래서 좋을 지역이 아니다.
마을 어르신은 775m봉을 '석두산'이라 했다. 서편 상리마을(우라리)서도 그랬고 동편 장사마을(감산리)서도 그랬다. 그 산 중턱에는 '석두암'도 있다. 일대에서 벌어졌던 신라-백제 간 쟁투와 관련된 전설을 담고 있다는 절이다.
숙재(475m), 부산(富山)능선(716m-731m-711m봉), 639m재, 병풍산(760m), 674m재, 석두산(775m)으로 이어진 산줄기는 우라리 상리마을 동편을 빙 둘러싼 둥그런 반원형이다. 760m봉에 병풍산이란 이름이 붙는 연원이 이것 아닐까 싶다.
711m봉과 병풍산 사이 639m재는 '달래고개', 병풍산과 석두산 사이 674m재는 '장사고개' 혹은 '우라고개'라 했다. 우라리서 달래고개를 넘어가면 채석장을 지나 건천읍 송선리 달래창이라는 마을에 닿고, 장사고개 혹은 우라고개는 산내면 감산리 장사마을과 우라리 상리마을을 잇는다.
이 산줄기가 석두산 구간을 지나면 서편 우라리 지경마을과 동편 감산리 장사마을을 잇는 임도가 나타나고, 그 다음에 748m봉이 솟았다. 그걸 우라리서는 '만근봉', 산 너머 장사마을에서는 '만병산' 혹은 '만명산'이라 불렀다. '만병산' 정도로 통일하면 될 듯하다.
앞서 상리마을을 반원형으로 둘러싼 산줄기가 있었듯, 병풍산-674m재-석두산-임도-만병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그 너머 장사마을을 반원처럼 감싼다. 그래서 장사마을은 매우 포근하게 느껴진다. 마을에 이르기까지 10리나 된다는 골에 전원주택들이 빽빽이 들어선 이유도 그것일 터이다.
하지만 골 밖에서는 거기 그렇게 깊고 좋은 골이 숨어 있으리라고는 짐작도 하기 힘들다. 골 입구가 있는 둥 없는 둥 표가 없기 때문이다. 옛날이야기 속 무릉도원 입구가 아마 여기 같았을 듯하다.
글 박종봉 편집위원
사진 정우용 특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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