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던 시절 국민의 화두는 대통령 직선제였다. 대통령 직선제야말로 주권재민의 실현이라고 믿었다. 개인의 자유가 법의 보호를 받는 민주주의의 꿈은 많은 이들의 희생과 노력 덕에 이뤄져 이제 누구나 주위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도 할 말을 하는 세상이 됐다. 그러나 5년 임기의 대통령제도는 지금 개혁의 도마 위에 올라 있다. 독식 구조의 대통령제와 단임제가 맞물려 임기 중반을 지나면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를 살피는 통에 정부의 기능은 떨어지고 차기를 염두에 둔 예비 권력 간의 극한대립만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검찰이 권력의 손아귀에서 벗어난다면 사회정의가 바로 설 것이라고 믿은 사람들은 검찰 독립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가져온 검찰권력의 강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이후 여론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견제받지 않는 검찰의 무소불위를 견제할 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국민의 눈과 귀로 비유되는 언론의 자유도 민주화의 바람 덕에 만개했다. 그러나 자유가 가져온 언론사와 기자들의 과잉은 언론 자유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을 늘어나게 했고 거칠 것 없는 언론권력을 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독재 시절 마지막 보루로 통하던 사법부의 독립도 이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신세가 됐다. 권력의 의도와 다른 용감한 판결이 나올 때면 박수와 갈채를 보내던 국민들이 이제 상식을 넘어서는 법원의 결정을 튀는 판결이라고 비판한다. 사법부 독립을 말하던 사람들조차 개개 판결에 일희일비하며 입을 댄다. 법과 양심에 따라 소신껏 판결하라고 했지만 여론과 상식을 벗어난 판결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질책하고 있다.
권위주의 시절에 비한다면 지금 나라 안에는 자유가 넘쳐난다. 분명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분업이 생명이다. 권력을 나눠 가지는 것이다. 나눠서 맡되 유기적인 협동이 분업이고 민주주의다. 독불장군으로는 분업을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제도와 현실이 권력을 나눠 가지고 있는지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대통령과 사법부 언론이 저마다 자신에게 부여된 권리와 힘을 그들만의 것이라고 여기지는 않는지 모를 일이다. 독불장군으로는 분업이 이뤄지지 않는다. 저마다 자신의 이익에만 급급하다면 민주주의의 톱니바퀴는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세종시는 서울의 돈과 사람과 권력을 나누자는 데서 출발했다. 행정부처를 서울에서 옮김으로써 서울의 집중과 지방의 모자람을 해결코자 한 정책이다. 그러나 세종시 문제는 첫 단추를 잘못 뀄다는 비판과 함께 수정안이 나왔다. 덩달아 여권에선 친이니 친박이니 하며 다투고 서울과 지방의 말은 저마다 다르게 나온다. 친이 친박이니 나눠서 대립하는 모습에서는 국민의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조차 의심스럽다. 세종시 수정안의 관철이 특정 정치인의 설득에 달려 있는 듯이 말하는 모습을 보면 이 나라는 특정 정치인과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나라란 말인가.
세종시 수정안은 본질과는 딴판으로 진행되고 있다. 세종시는 행정부처 이전을 위한 목적으로 출발한 신도시다. 행정부처 이전이 취소되면 세종시 자체도 원점으로 돌려야 한다. 정부는 수정안을 밀어붙이며 이런저런 조건을 내건다. 행정부처를 옮기는 원안을 실현할 수 없다면 당장의 몰매를 맞더라도 백년대계의 차원에서 근본부터 수정해야 한다. 세종시는 기업도시 과학비즈니스벨트로 출발한 도시가 아니다. 억지로 고치려다 보니 당초 의도와는 달리 헝클어지고 있다.
역사 드라마를 보는 아이들조차 권력은 나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권력을 나누어 가지는 연습 없이 이뤄지지 않는다. 나누지 않으려다 보니 온갖 편법이 난무하고 얽히고 설킨다. 국가 백년대계는 행정부처를 옮기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서울과 나라의 권력을 지방과 국민들과 어떻게 나눠 가질까를 고민하는 일이다. 그게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이다.
徐泳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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