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관급 장교들이 외국과의 전쟁을 독단적으로 벌여도 뒤탈이 없었다. 1931년 관동군 작전참모 이시와라 간지(石原莞爾'1889~1949) 중령은 이타가키 세이시로 대령과 공모, 남만주 철도 폭파사건을 조작하고 만주를 점령했다. 만주사변은 본국 정부나 육군, 심지어 관동군 상부의 허가조차 받지 않고 벌인 전쟁이다. 1만여명의 관동군으로 장학량의 동북군 23만명을 격파했다. 일본 본토의 3배 면적을 얻었지만 국제적인 항의사태를 불러왔다. 그런데도 청년 장교들의 우상이 됐고 대령으로 승진했다.
1889년 오늘, 야마가타현에서 사무라이 집안에서 태어나 육사, 육군대학을 나온 엘리트 장교이자 대동아공영권과 비슷한 '동아연맹'을 꿈꾸는 우익 사상가였다. 만주사변 뒤로는 내리막길이었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소련과의 결전에 대비해야 한다며 중일전쟁을 반대했다. 태평양 전쟁을 앞두고는 앙숙이던 수상 도조 히데키에 대해 "기름 때문에 전쟁을 하는 놈도 있나"며 '국가의 적'이라고 맹비난했다. 이로 인해 중장으로 강제예편 당해 훗날 전범 재판에 회부되지 않았고, 전후엔 일본의 탈무장화를 주장했다. 제국주의 시대가 낳은 괴물이었다. 박병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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