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 많은 출연자를 위해 활짝 열린 무대
2009년 12월 28일 월요일, 이날은 조금 특별한 날이었다. 회사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대신, 회사 동료 Andy와 함께 Open Mics 현장인 멕시칸 레스토랑 이구아나로 향했다. Open mics란 주로 아마추어 뮤지션들이 주어진 무대 위에서 콘테스트 형식으로 자유로이 자신만의 공연을 선보이는 것이다.
장르는 매우 다양해서 오페라에서 뮤지컬, 컨트리, 랩 등 전혀 제약 없이 자신만의 음악을 선보일 수 있는 것이다. 이 Open mics에서 좋은 인상을 남긴다면 그들에게는 해당 레스토랑이나 술집 등지에서 자신의 쇼를 일정시간 (일반적으로 30분 내외) 선보이고 그에 해당하는 보수까지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일하는 무대(Back Stage)는 많은 배우와 가수들의 등용문으로 유명하다. 이 레스토랑으로 인터뷰를 오게 된 것은 사실 레스토랑 주인이 무대의 큰 광고주 중 한 명이라 고객관리 차원에서 방문한 것이며 앤디가 나를 데려간 이유는 이런 것도 한번 경험해 보라는 취지와 사진을 부탁하고 싶어서라고 한다. 레스토랑은 '이구아나'라는 유명한 멕시칸 음식점이다.
사실 우리는 예정보다 한 달이나 빨리 방문했다. 예상치 못한 우리의 갑작스런 방문 소식을 듣고 쿠바 출신의 주인 빌리는 모든 아티스트들에게 무대 직원들이 온다고 연락을 했고, 순식간에 30개 팀이 몰려들었다는 후문이다.
뉴욕은 참 예술을 사랑하는 도시다. 딱히 이 레스토랑 뿐만 아니라 뉴욕의 많은 레스토랑과 심지어 커피숍 조차도 이런 예술 행사들을 자주 연다. 그래서 전문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동네 레스토랑에서, 커피숍에서 무대에 오를 기회는 항상 존재한다.
주인 빌리는 우리에게 맨해튼 최고의 나쵸칩과 살사, 그리고 모히또를 제공해 주었다. 그는 쿠바에서 가수였단다. 카스트로 집권 직전에 쿠바에서 뉴욕으로 넘어 왔는데, 카스트로 정권은 그의 보스였던 사람과 자신의 친구들을 모조리 죽였단다. 그 후 자신은 독일에 있는 미군캠프에서 가수 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위와 같은 특이한 이력으로 CIA의 감시 하에 있다고 한다. 미국에는 역시 영화같은 사연을 가진 사람들도 참 많다.
공연이 시작됐다. 출연자는 아마추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매우 뛰어난 아티스트들도 있었다. 13번째 출연자쯤 되었을까? 볼품없어 보이는 늙은 아주머니 한 분이 나오셨다. 때마침 마이크도 갑자기 작동이 되지 않아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 아주머니는 마이크를 고치느라 분주한 스태프들에게 손짓으로 나가라고 한 후 마이크 없이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가늘지만 힘찬 목소리는 웅성거리던 사람들을 한순간에 잠재워 버렸다. 영화 속 늙은 창녀가 노래하듯, 그녀는 가녀린 체구와 허스키한 목소리로 애환이 담긴 노래를 뿜어내었다. 그 아주머니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은 기립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 날 출연자들 중 누구보다도 큰 반응이었다. 그녀는 환한 표정을 지으며 무대를 내려왔다. 사람들은 "You gotta inner mic!"(당신은 몸속에 마이크가 있군요!) 라며 찬사를 보내었다.
공연이 끝난 후 그녀에게 '정말 감명 깊었다'고 말을 건넸다. 대화 도중 "나도 기타를 칠 줄 안다"고 하자, 그녀는 "왜 도전하지 않았지? 누가 알아, 네가 우승을 했을지?" 라고 말했다.
"에이, 어림도 없어요" 라고 대답했더니 "상황? 나의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모두에게 마이크가 있었지만 나에게 마이크가 있었던가? 난 그것에 개의치 않고 도전을 했어. 내가 원하는 바가 분명하니까."
그녀의 마지막 한마디는 아직까지도 마음속에 커다란 여운으로 남아 있다.
자신의 삶과 꿈을 위해 너무나도 열심히 노력하는 그녀와 다른 도전자들을 보며, 지금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를 깨닫는 동시에 '이 좋은 환경에서 나는 왜 더 노력하지 않는가?' 라며 자책 아닌 자책을 해본다.
이구아나 레스토랑을 나서며 앤디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서 어두운 지하로 내려가 7번 열차에 몸을 싣는다. 가슴 속 큰 여운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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