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얼음조각들이 만들어낸 '별천지'
2010년 새해 황금연휴를 이용해 중국에서 가장 추운 도시인 하얼빈을 방문했다. 안중근 의사가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의거 장소로 잘 알려져 있는 하얼빈은 중국 대륙에서 위도가 가장 높은 헤이룽장 성의 성도이며 겨울 내 평균 기온이 영하 20℃ 정도로 떨어진다.
인천공항서 2시간여를 날아온 비행기가 오후 8시경 착륙 직전, 현지기온이 영하 32도라는 스튜어디스의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비행기 출구를 빠져나오니 차디찬 공기가 코끝을 휘감는다.
하얼빈 시내로 운행하는 리무진으로 1시간여를 이동, 하얼빈 중심가인 중앙대제 주위에 있는 민박집에 여장을 풀었다. 중앙대제는 쑹화강으로 이어지는 보행자 도로이며 연중 언제나 활기가 넘치는 하얼빈 최고의 번화가다. 거리 양측에는 이국적인 느낌의 러시아풍 건물들이 즐비하다. 중앙대제 중간쯤에 있는 식당에 들러 오리고기와 하얼빈 맥주로 허기를 채우며 여행의 계획을 그려본다.
하얼빈은 마침 도시 전체가 빙등제 눈조각축제 스키 등 다양한 겨울축제가 한창이었다. 곳곳에 있는 얼음과 눈 등에 네온사인을 설치하고 레이저 조명을 밝혀 화려한 볼거리를 관광객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강추위에 귀를 감싸는 털모자와 안면 마스크를 하고 다녔지만 입김으로 마스크는 어느새 하얗게 얼음 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버스 안에서도 바깥 기온차로 인해 두꺼운 얼음이 창문을 가려 창밖을 전혀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연초 하얼빈은 겨울 축제로 연중 최고의 관광성수기이다. 낯선 곳에서 굳이 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택시 잡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얼빈은 위도가 높아 밤이 빨리 찾아온다. 오후 4시인데 벌써 어두워지는 듯했다.
카메라도 계속 얼어 제대로 작동이 되질 않았다. 일회용 밧데리는 추위 때문에 제 열량을 발하지 못해 자주 교체해야 했다. 촬영하지 않을 때는 옷 안쪽에 품고 있어야 할 정도. 카메라 때문에 불룩한 틈새로 숭숭 들어오는 칼바람이 속까지 들어오는 느낌이다.
하얼빈은 온도계가 밤엔 보통 영하 30도까지 내려간다. 눈이 오고 난 이후에 녹지 않은 상태에서 차들이 계속 다녀서 모든 도로는 빙판으로 되어있고 인도 역시 걸어 다닐 때 항상 주의하지 않으면 엉덩방아 찧기 일수다. 차들은 거의 속도를 줄여 천천히 운전하며 신호등에서 일단 정지했다가 출발할 때 서서히 속도를 올리는 폼이 꼭 기차 출발하는 형태와 비슷하다. 모든 차들이 천천히 운행하므로 심각한 대형 사고는 적지만 가벼운 접촉사고는 잦다고 한다.
다음 날 100위안(한화 2만원)을 주고 하얼빈 하루 투어에 나섰다. 25인승 버스에 한국에서 파견 나와 대련에서 근무한다는 직장인 4명과 부부 한쌍, 그리고 젊은 가족 한 팀등 총 11명이 함께했다. 오전 10시에 출발해서 한 시간여 달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일제시대 731부대이다. 이곳은 넓은 운동장에 H형자의 2층 건물로 그 길이가 약 100m나 되는 꽤 큰 규모이다.
당시 일본인 과학자인 이시히 시로가 세균전의 중요성을 알고 731부대 부대장으로 부임한 후 각종 생체 실험을 한 곳이다. 당시 상황들을 재현해 놓은 밀랍인형들과 사용되었던 각종기구들을 전시해 놓고 있으며 입장료는 받지 않았다.
하얼빈 국제빙설축제는 일본 삿포로 눈축제, 캐나다 퀘벡 윈터 카니발과 함께 세계 3대 겨울 축제로 꼽힌다. 그 중에서도 빙설축제로는 하얼빈의 빙등제가 최대규모를 자랑한다.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하얼빈에서 제일 큰 규모를 자랑하는 얼음조각으로 만든 빙등제 현장에 도착했다. 빙등제의 백미는 밤에 만끽할 수 있다.
초대형 얼음 조각 작품들은 낮에는 순백으로 맑게 빛나고 밤에는 찬란한 불빛으로 물들어 공원 일대를 별천지로 만든다. 해질 무렵인 오후 4시부터 얼음 조각 내부의 조명이 하나 둘씩 켜지면서 아름다운 선율을 배경으로 오색등이 영롱한 빛을 발산하면 동화 속 환상의 나라가 지상에 펼쳐진다.
축제장은 높이가 2m는 더 되어 보이는 담장을 모두 네온사인을 넣어 얼음으로 둘러 놓았다. 들어가는 입구 정문에는 얼음으로 조각해 놓은 건물의 높이가 7~8층 정도 되어 보이며, 그 길이는 수백m나 되는 크기의 조각품이 입구 정문에 쭉 이어져 있다.
200위안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서니, 그 규모와 야간 조명으로 인한 화려함과 섬세함이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하다. 각국을 대표하는 건축물들을 웅장하면서도 정교하게 재현해 놓았다. 한중간에 자리한 자금성 건물, 왼쪽에는 로마 원형 경기장, 오른쪽으로는 오사카성, 그리고 뒤쪽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등. 수많은 조각품들이 거대하고 정교하게 조각되어 관람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황병수(영남대병원 방사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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