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내쫓은 꼴."
사석에서 만난 한 여당 인사는 이렇게 적나라한 표현을 썼다. 몇 달째 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세종시 문제를 두고 한 말이다. 그는 "현 정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겨 놓은 유산을 청소하다가 임기를 마칠지 모른다"는 걱정도 했다.
이런 말이 나올 법한 상황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3년째를 맞아 자신의 정책과 소신으로 승부를 걸어도 시간이 부족한 판에 노 전 대통령이 남겨 놓은 세종시라는 엄청난 유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난전을 벌이고 있다. 현재 상황대로라면 정치의 불가측성(不可測性)이라는 변수가 남아 있긴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공명이 되고 이 대통령은 중달이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정부가 수정안을 내놓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지만 싸움의 결과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여당 내 친박계 의원들과 야당이 반대하고 있는 이상 국회 통과가 어렵고, 수도권을 제외한 전 지방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해 있다. 사면초가(四面楚歌)의 형세다.
이 대통령이 칼을 빼들었다가 궁색한 처지에 몰려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현 정권으로선 광우병 사태 때보다 더한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다. 대통령의 실패는 국가적 불행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왜 이리 어설프게 일 처리를 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시작했으면 제대로 하든지,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다면 일찌감치 포기하거나 후퇴하는 것이 옳았다.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내놓으면서 그렇게 강조하던 '국가 백년대계'를 퇴로조차 마련해 놓지 않은 채 어수룩하게 진행하고 있다는 자체가 놀랍다. 법을 바꾸고 국민을 설득하는 일인데도 그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다. 단순히 '수도 분할의 비효율성' '불 꺼진 행복도시'라는 구호만 앞세우고 밀어붙이기에는 그 사안이 너무 복잡하고 난해하다는 점을 몰랐다는 것인가.
현 정권은 출발부터 이런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 지방을 바라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5+2 광역경제권' 같은 지역 개발 정책을 내놓긴 했지만, 예전 정권과는 달리 국토 균형발전이나 수도권 과밀 해소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듯했다. 정권 핵심들은 수도권 중심주의자인 것처럼 행동해 왔다. 취임 첫해 수도권 규제 완화를 시도했고 지방의 혁신'기업 도시 조성에도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전임 정권에서 해놓은 것을 기피하려는 제스처가 아니라, 효율성을 앞세우는 이 대통령의 정치 철학에 기인하는 문제였다.
효율성을 강조하면 지방은 정책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 수도권에 집적하면 효율성과 부가가치가 높아지겠지만 국민 전체 삶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 세종시 사태도 수도권과 비수도권 논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단순하게 세종시 하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지방 홀대의 문제와 직결돼 있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잘한 일을 하나 꼽으라면 지역 균형발전이다. 다른 업적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세종시, 기업'혁신 도시, 공기업 이전 등 지역을 배려하려는 정책 하나만큼은 괜찮았다는 평을 받는다. 그런 일을 뒤집으려고 했으니 지역민들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서울 사람들은 도저히 느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밑바닥 지역 민심인 것이다. 수도권 집중화로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는 지역 살림살이를 체감적으로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명분이 좋다고 하더라도 지역을 빈 껍데기로 만드는 정책에 찬성할 리 만무하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제대로 된 지역 발전 정책을 내놓고 민심을 잡아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의 유산을 붙잡고 허송세월할 것이 아니라 MB만의 획기적인 지역 발전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우리 같은 '시골 사람들'에게서 노 전 대통령 시절이 그립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 게 아닌가.
朴炳宣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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