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정신대 할머니의 죽음

입력 2010-01-09 07:54:08

"조선과 일본은 다 같은 유교 국가이면서도 일본은 상무(尙武) 정신을 발전시켜 무사도를 전통으로 삼았는데, 조선은 무(武)를 천시하여 문약(文弱)에 빠지고 문존무비(文尊武卑)라는 폐습을 이어 오다가 결국은 무사를 존중하는 일본에 병탄당하고 말았소. 나는 언젠가는 우리 조상들, 즉 조선 왕가를 대표하여 문약 풍조를 없애지 못하여 망국(亡國)을 초래한 잘못을 우리 동포들 앞에서 깊이 사과하고 싶었소."

일본 육사 56기 출신으로 군번 1번을 부여받았던 이형근(李亨根) 전 육군참모총장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일왕이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그날 일본 육군 대위로서 영친왕(英親王'이은)을 찾아뵙고 나서 후일 회고했다는 내용의 일부이다.('박정희의 결정적 순간들' 중에서, 조갑제 지음)

올해는 조선의 국권을 상실한 경술국치(庚戌國恥) 100주년이 되는 해. 1910년 8월 22일 매국노 이완용과 데라우치 마사타케 일(日) 통감 사이에 조인된 합병조약으로 우리나라는 지도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36년 뒤 광복을 맞았다. 망국 속 일본에서 구차한 영욕의 삶을 살아온 영친왕의 '망국을 초래한 잘못에 대한 깊은 사과'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국치 100년을 맞은 경인년 새해 벽두부터 우울한 소식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다. 호랑이해, '경사스런 인연의 해'라고 덕담을 건네며 경인년 새해를 시작할 즈음인 2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순악 할머니가 82세로 영면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생명의 끈을 놓지 않았던 할머니는 그토록 바랐던 일본의 사과 한마디 듣지 못하고 한 많은 세상을 하직했다. 자기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해온 뻔뻔스런 일본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그 많은 이야기들, 이제는 누가 해줄까.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 여성은 88명. 13일 서울의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선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900번째 집회가 열린다. 1992년 1월 8일부터 시작됐으니 경술국치 100년인 올해로 18주년이 되는 셈. 우리 정부도 이미 손 놓아 버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사과 한마디 받아내려 했던 김 할머니가 생전 남긴 말이 우리들 가슴을 아프게 한다.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자꾸 생각하고 이를 악물고 기억했지. 다 얘기해 줄라꼬." 이제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하며 저들의 사과를 받아내야 할 차례가 됐다.

정인열 중부지역본부장 oxe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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