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은 우직함 연습은 牛프로
100년 만의 폭설이 전국을 휩쓴 직후인 지난 5일은 강추위로 옷속까지 칼바람이 파고들었다. 체험 취재를 위해 달려간 청도 역시 채 녹지 않은 눈에다 땅까지 꽁꽁 얼어버린 상태.
기자는 아침 일찍부터 최고의 싸움꾼인 싸움소를 체험하기 위해 이서면 가금리의 '우리목장'에 도착했다.
꽤나 큰 4천㎡의 농장엔 100여 마리의 한우가 연신 뜨거운 입김을 내쉬면서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고, 농장주인 예병권(49) 사장은 한우들의 아침식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기자도 도착하자 마자 모자를 눌러쓰고, 목장갑을 낀 뒤 예 사장의 일부터 거들기 시작했다. 1시간 가량의 사료배식 후 본격적인 싸움소 체험에 들어갔다.
오늘 동반자는 '아만세'. 6살이다. 검붉은 피부, 근육질의 육중한 몸부터가 위협적이었다. 아만세의 본명은 '아침에 만나는 세상'이다. 독특했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싸움소로 입문할 때인 6년 전 지역의 한 방송 프로그램 측이 취재 후 그 방송사로부터 받은 이름이라는 것.
아만세는 예 사장이 6년 전 송아지 때부터 발굴해 키운 '명품 싸움소'이다. 그래서 2006년 경남 의령소싸움대회에서 3위에 입상한데 이어 2007년 청도소싸움축제 땐 4위, 2008년 청도대회에서 설욕전 끝에 1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아만세의 현재 몸무게는 700kg. 대회 출전 때는 체력훈련 뒤 660kg급인 병종(특)에 출전한다. 자신의 체급에선 절대 강자다. 아만세가 그동안 대회에서 벌어들인 수입은 1천만원이다. 예 사장은 '밥값'은 하고 있고, 이젠 몸값만 남았다고 웃었다. 아만세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연간 150만~200만원 선이니 얼추 밥값은 한 셈이랄까.
아만세의 방은 '특실'이다. 일반소 서너 마리가 들어가는 15㎡(5평)에 혼자 살고 있고, 바닥에는 볏짚이 아닌, 톱밥이 깔려 있었다. 방의 위치도 농장의 입구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볕이 잘 드는 따뜻한 곳이었다.
먹는 것은 끼니마다 '특식'이다. 아만세에겐 매끼 볏짚, 콩, 보리, 건초 등을 섞은 영양식을 주고, 항상 끓여준다(화식·火食). 먹는 양도 적지않아 끼니마다 무려 30kg을 먹어 치운다. 후식도 먹는다. 대파 한 단 크기의 마른 볏짚이 아만세의 후식.
오전 8시 여물통에 영양식을 가득 담은 뒤 예 사장과 함께 아만세의 방으로 들어갔다. 평소 동물을 무서워하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아만세의 몸이 워낙 육중해 우리에 들어가기가 솔직히 겁이 났다. 하지만 잠시뒤 두려움은 기우였다. 싸움소는 사람에게도 사나울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이었던 것. 순한 양처럼을 얌전했고, 워낙 배고 고팠는지 기자가 손에 든 여물통에 주둥이를 깊숙이 박기까지 했다. 아만세가 편하게 식사를 하게끔 여물통을 우리 가운데 내려둔 다음 우리 한 쪽의 등 긁는 도구로 식사중인 아만세의 등을 부드럽게 긁어주었다. 역시 아만세가 경계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질 필요가 없을 만큼 식사에 여념이 없었다. 예 사장은 "등을 긁어준다는 것은 소와 사람간의 교감"이라고 했다. 아침 식사는 아만세와의 거리를 없애는 시간이었다.
소는 되새김질을 하기 때문에 식사 시간이 길다. 식사 준비에다 후식까지 먹는데 1시간 이상은 족히 걸린다. 아만세가 식사를 하는 동안 삽으로 우리 안의 배설물을 치우고, 톱밥을 다시 깔았다. 오전 10시 아만세 '아침식사 작전'이 끝난 시간이다. 한파가 몰아쳤지만 나에겐 여름이었다. 휴식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점심 식사 준비에 들어가야 했다. 아만세의 영양식은 매일 우리 입구 대형가마솥에서 직접 끓여준다. 매일 저녁 식사 후 영양식을 끓이는 가마솥 체험은 예 사장으로부터 듣는 것으로 대신했다. 가마솥에 100kg 정도의 영양식을 만들기 위해 물을 1시간 30분 정도 펄펄 끓인 뒤 영양식 재료를 넣고, 다시 30분 이상 푹 끓인다. 그 만큼 시간과 정성을 들인다는 얘기다. 예 사장은 100마리의 한우들에게 사료를 주는데는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지만 아만세 영양식 만들기에는 하루 2시간씩을 투자한다고 했다. 특급 식사만큼 특급 정성이랄까.
건초 쌓기, 우리 주변 정리, 아만세 체력훈련 도구 점검 등으로 오전 시간을 보낸 뒤 낮 12시 다시 아만세의 점심 공수작전에 들어갔다. 아침식사에 같은 방식으로 가마솥 뚜껑을 열어 김이 모락모락나는 영양식을 아만세에게 공급했다. 점심식사는 훨씬 수월했다. 공포심이 사라졌기 때문에 아만세가 식사를 하는 동안 등을 쓰다듬어 주는 모험(?)도 자연스러웠다.
오후 2시. 드디어 아만세의 동계 체력 훈련 시간이 돌아왔다. 아만세는 올 3월 열리는 청도소싸움대회 2연패를 목표로 착실히 동계훈련을 하고 있다. 아만세는 매일 오후 농장 인근 하천둑 4km거리를 1시간 정도 걷는다. 3일에 한번씩 하천의 훈련장에서 1시간 정도 타이어끌기를 하고, 또 3일에 한번씩 1시간 정도 '산악구보'도 병행하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산악구보를 마친 뒤에는 뿔치기, 밀치기, 목치기, 머리치기 등의 기술도 연마해야 한다. 아만세는 거의 매일 3시간 이상의 강도 높은 동계훈련을 소화하고 있는 셈. 아만세는 차 타기 훈련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차 타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싸움소들은 대회 직전 컨디션 난조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평소 차 타는 훈련을 통해 차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아만세의 동계훈련은 타이어끌기.
오후 3시쯤 아만세를 '전용차'에 태운 뒤 20여분 걸리는 인근 하천 훈련장으로 향했다. 트럭의 뒷공간을 안방처럼 여기는 듯 아만세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하천변 왕복 200m 거리의 훈련장에는 돌까지 얹은 대형타이어 2개가 나란히 훈련장 입구에 비치돼 있었다. 타이어와 돌의 무게는 100kg. 오늘은 평소와 달리 타이어 위에 기자가 직접 올라타기로 했다. 중무장한 것을 감안하면 평소보다 배에 가까운 무게가 아만세를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드디어 타이어에 올라탔지만 아만세의 힘을 과소평가한 덕을 톡톡히 봐야 했다. 예 사장의 고함과 함께 아만세가 쏜살같이 달려나가는 바람에 기자는 크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언땅에 내동그라졌으니 고통은 꽤나 오래갔다. 단단히 준비를 해 다시 타이어에 올라타자 아만세에겐 여느 소의 느림은 없었다. 다소 공포스러울 만큼 소 답지 않은 속도와 힘으로 단숨에 훈련장 한 바퀴를 돌았다. 1시간 정도의 훈련을 마무리 한 뒤 우린 다시 농장으로 돌아왔다. 훈련을 마친 뒤 뒷정리를 하고 싸움소 아만세 체험을 마무리했다. 아만세의 머리에는 머리털이 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지난해 진주대회에서 2시간 가량의 혈투끝에 얻은 상처다. 상처는 치유됐지만 진주대회 때의 아만세의 피범벅 얼굴에 예 사장은 가슴이 저렸다고 했다. 그래서 올해는 2개 대회에만 참가해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기자는 함께 뛰면서 훈련에 열성을 보인 아만세가 3월 청도대회 때 꼭 우승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아만세 파이팅.'
이종규기자 jongku@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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