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책 읽기]살림의 경제학(강수돌/인물과사상사)

입력 2010-01-07 14:14:56

개인과 공동체를 살리는 새로운 경제를 꿈꾸다

정부는 올해 경기에 대해 장밋빛 전망을 내놓지만, 서민들이 체감하는 실물경기는 정말로 어렵다. 서민들의 삶은 나날이 더 팍팍해져 가는데,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 편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이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오랜 세월 시대양심을 대변해왔던 대학조차 자신의 몸값을 높여 취업에 성공하려는 학생들의 바쁜 종종걸음과 자본의 논리만이 가득할 뿐, 사회현실을 비판하는 격문 한 장 찾아보기 힘든 지 오래되었다.

답답한 마음에 고려대학교 강수돌 교수의 '살림의 경제학'을 꺼내 읽어본다. 살림이 무엇일까? 살림은 죽임과 대립되는 말이다. 강수돌 교수는 이 책에서 인류 공멸을 부르는 자본주의의 치명적 오류, 죽음을 부르는 경쟁과 이윤의 법칙, 병든 사회를 부르는 부자강박증, 한국의 집단적 일중독증과 성장 중독증을 진단한다. 그것을 넘어설 방법으로 인간을 위한 경제논리와 살림의 경제학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한탕주의식 떼돈벌기 아직도 식지않아

우리 사회의 부자 되기 열풍은 아직 식지 않고 있다. 특히 주식이나 부동산 투기를 통한 한탕주의식 떼돈 벌기에 성공한 일부 영리한 사람들의 성공담은 성실한 사람이 잘사는 사회라는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가치관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최고 부자 한 사람이 무려 1천83채의 집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은 지 오래지만 아직도 집 없는 사람이 많은 것은 다주택자들이 전체 주택의 60%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5.5%의 땅부자들이 국토의 74%를 소유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20%만이 안정된 일자리와 생활을 영위하고, 나머지 80%는 비정규직이나 실업자 등 형태로 비인간화되어가는 양극화 사회다. 여기서 우리는 상층부 20%에 들기 위해 돈벌이 경쟁을 더욱 가속화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아니면 모든 사회 구성원이 더불어 소박하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참 행복으로 가는 길인지 차분히 성찰해야 한다. 만약 후자가 옳다면, 그에 걸맞은 실천을 하나씩 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하지만 사실은 상위 20%에 들기 위한 경쟁에서 대다수가 낙오할 수밖에 없기에,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는 것이 아닐까?

##풀뿌리 민중이 자율적 삶의 구조 구축해야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상인이나 지주가 아니라 밤에 별 아래서 강한 경이로움을 맛보거나 타인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자라고 한다. 존 러스킨의 말이다. 행복한 삶을 찾아 50년 동안 경제성장의 길로 달려온 한국 사회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저자는 기득권 없는 밑바닥 주민으로부터 올라오는 운동만이 세상 변화의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생태계 파괴와 화석에너지 문명의 종말이 피할 수 없는 화두가 된 오늘날, 지역개발이란 이름의 지역 파괴를 반대하고 조세, 준조세 등의 국가권력에 불복종하는 주민자치운동, 귀농운동, 유기농과 그 직거래운동, 농촌과 도시공동체운동 등의 자급자족, 자치운동만이 신자유주의적 세계시장을 넘어서는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갈 것이다. 자본과 국가권력이 결합된 거대 시스템의 지배 밑에서 오늘날 우리 삶은 갈수록 비소해지고, 인간정신은 갈수록 쇠약해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현실에 대한 사회'생태적 근본 혁신이 광범위하게 일어나야지만 보다 행복한 삶을 구축할 수 있다고 본다. 시장으로부터 탈상품화, 국가로부터 탈권력화를 이루어나가는 과정에서 풀뿌리 민중이 자율적 삶의 구조를 새롭게 구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민중복지의 창조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주장이 다소 관념적으로 들리긴 하지만, 강수돌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말과 글로서만이 아니라 삶과 행동으로 작은 실천이라도 하려고 하는 보기 드문 지식인이다. 그는 시골에서 세 명의 아이를 키우며 사는데, 평소 아이들에게 밥이 똥이고 똥이 밥이라고 가르친다고 자랑한다. 자신도 매일 아침 부춧돌 잿간에 똥을 누고, 똥아, 잘 나와서 고마워 라고 인사한다고. 조치원 신안1리 마을 이장을 하며, 지역주민들과 고층아파트 건설 반대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신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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