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갑자(甲子)가 돌고 돌아 백호(白虎)가 다시 태어났다. 60년 전 5년둥이 한국의 호랑이는 상처투성이였다. 걸음마를 떼자마자 동족상잔의 피를 맛봐야 했다. 두 마리의 호랑이가 서로 싸우다 죽다시피하고 가죽마저 벗겨진 상태였다. 산과 들은 먹잇감 하나 없는 황무지였다. 천하를 호령하는 호랑이의 기백은 온데간데없고 궁상맞기까지 했다. 백수의 왕 호랑이가 포효(咆哮)는커녕 고양이처럼 꼬리를 감추고 수십년을 버텨내야 했던 것이다.
60갑자를 앞가슴에 새긴 2010 경인년. 한국 호랑이는 많이 달라졌다. 이제 어느 때라도 포효할 준비가 돼 있다. 세계 10대 경제강국 진입에다 세계 6번째 원전 수출국, IT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에는 G20 정상회의도 유치했다.
동양에서 특히 한국에서 새해, 첫 출발에 대한 기대감은 남다르다. 동물이 가진 상징을 새기며 한 해를 시작하고 소망을 기원한다.
호랑이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 수호신인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사신(四神) 중 유일하게 실존하는 동물이다. 사냥할 때는 목표물에 신중히 접근해 일시에 덮친다. 번개 같은 도약력과 강력한 앞발이 힘의 원천이다. 평소에는 거의 소리를 내지 않는다. 호랑이가 단발성 포효를 할 때는 대부분 상대방을 제압하고자 할 때뿐이다. 평소엔 조용한 성품이지만 결정적일 때 큰 소리를 낼 줄 알고, 흔적없이 사라질 줄도 안다. 하지만 호랑이도 실패가 많다. 열에 아홉은 사냥에 실패하고 만다.
호랑이의 나라에서 호랑이 해를 맞은 대운상승(大運上昇)의 기회를 살리기 위해선 어느 때보다 우리의 치밀한 준비와 현명한 선택이 요구된다.
올 한 해는 대구경북과 시도민들에게 많은 도전과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4년간 자치단체를 경영할 인재를 뽑는 지방선거가 있고, 침체한 경제를 살려 가정에서, 직장에서 웃음꽃도 피워야 한다.
가장 큰 도전은 현 정부 들어 지역균형발전 논리는 점점 퇴색하고 있고 대구경북의 앞길을 가로막는 칼날이 곳곳에서 솟구치고 있는 것이다. 지방의 거센 반발에도 정부는 5일 세종시를 '경제교육과학중심도시'로 조성하는 계획을 확정했다. 이대로 갈 경우 대구경북의 청사진이 산산조각나게 됐다.
세종시 수정 조성으로 가장 큰 피해(루저)지역은 대구경북이 될 수밖에 없다. 세종시는 파격적인 분양가에다 정부의 보이지 않는 압박과 지원으로 메디-바이오와 첨단업종의 기업'연구소를 빨아들여 첨단의료복합단지, 경제자유구역, 테크노폴리스, 국가산업단지 등 성장동력 인프라를 이제야 갖춘 대구경북은 유치 타깃 기업, 연구소를 모두 충청권에 뺏길 수밖에 없다. 지역의 경제자유구역, 혁신도시에도 최소한 세종시와 같은 인센티브를 주는 장치를 만들어야 하고 악조건 속에서도 대구경북 성장가도에 필요한 기업과 연구소는 반드시 유치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대구경북이 또 풀지 못한 숙제는 남부권(동남권) 신국제공항 건설이다. 대구경북, 부산경남권이 세계로 통하는 독자적인 국제공항을 보유하지 않고서는 수도권과 서해안 경제권과 경쟁할 수 없는 처지인 것은 물론 영남권이 추진중인 각종 사업들이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 남부권으로서는 신공항 건설이 사활이 걸린 문제다.
첨단의료복합단지 성공여부도 간단치 않다. 복수지정된 충북 오송단지가 세종시, 대덕연구단지 등과 연계하면 접근성, 정주환경, 고급인력 확보 등 여러 측면에서 대구보다 앞설 수밖에 없다. 특히 수도권 경제권이 충청권까지 확대되고 있는 추세여서 대구 첨단의료복합단지는 자칫하다간 빈껍데기로 전락할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한국뇌연구원 유치와 교육특구 지정도 올해 우리가 쟁취해야 할 과제다.
세종시 사태에서 보듯 우리 앞에는 많은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대구의 각 경제주체가 지혜를 모아 치밀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올 한 해는 조용하고 신중하지만 결정적일 때는 단호하게 나아가는 호랑이의 기품으로 난제를 풀어가자. 연말에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대구경북이 호랑이처럼 당당하게 어깨 펴고. 힘들었던 일을 모두 떨쳐내고 한바탕 웃으며 크게 포효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춘수 사회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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