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너무도 무심했다. 아들이 갑자기 쓰러진 것도 모자라, 간호하던 딸마저도 쓰러졌다. 졸업을 앞두고 취업만 하면 부모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했건만 다 키워놓은 20대 아들 딸이 줄줄이 병석에 드러누웠다.
"내 생에 이런 일도 생길 수 있구나." 멍하니 탄식만이 흘러나왔다. 부유하진 않아도 남 못잖게 잘 키운 아들 딸이 가장 큰 재산이라 생각했고, 부지런히 일해 빚 안 지고 사는 것으로 세상에 당당하다 생각했는데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말았다.
내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 처음 전해진 것은 2008년 6월이었다. 호주 어학연수를 갔던 상현(가명·26)이가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 중이라는 난데없는 전화가 왔다. '뇌동정맥기형'이라는 선천적 질환이라는데 살면서 언젠가는 겪어야 할 시한폭탄을 안고 산 셈이라고 했다. 하필이면 부모 형제도 없는 머나먼 이국땅에서 뇌가 문제를 일으키다니…. 아내와 딸(세진·가명·23)은 당장 호주행 비행기를 탔다.
"2차 수술은 시신경을 손상시킬 수밖에 없으니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해 부랴부랴 호주로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호주의 의료비는 상상을 초월했다. 두달여간의 치료비만 1억원. 도저히 치료비를 감당할 길이 없어 떠밀리다시피 한국으로 와야 했다. 호주 병원에는 "한국에 돌아가서 갚겠다"는 각서를 썼다. 그쪽에서도 입원기간이 길어질수록 못 받는 병원비만 늘어가는 처지이니 별 수 없이 퇴원에 동의를 해 줬다.
호주에서 한국으로 오는 데는 간호사 한명이 동행해야 했다. 비즈니스석을 이용해야 하는데다 간호사 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니 한국으로 오는 데만 1천만원이 넘게 들었다.
한국에 도착한 후 한시름 놓았겠지 했건만 상현이는 자꾸 뇌에 염증이 도졌다. 수술만 네번을 받아야 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지난해 11월 말에는 두개골을 빼내고 인공두개골을 삽입하는 수술을 받았다. 뇌출혈이 회복되는 데는 발 빠른 재활치료가 관건이라는데 염증 치료에 매달리느라 재활에는 손을 쓰지도 못했다. 그 사이 상현이의 회복속도는 더뎌졌고, 오른쪽 몸에 온 마비는 좀체 진전이 없다.
그러는 가운데 딸마저 쓰러졌다. 오빠를 간호해 주던 착한 세진이. 하지만 어느 날 두통이 있다는 말을 자주 했고, 눈이 침침해졌다고 불편함을 호소하기에 검사를 받았더니 '뇌종양' 판정이 내려졌다. 상현이가 대구로 옮겨와 4차례의 수술을 연이어 받을 무렵이었다. 부랴부랴 서울로 옮겨 수술을 받았지만 이후 딸은 왼쪽 팔과 다리에 마비가 왔다. 그나마 인지 기능에 손상이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단란했던 가족은 졸지에 이산가족 신세가 됐다. 아내는 딸 간호를 위해 서울에 머무르고 나(이한수·가명·52)는 아들 간병을 위해 일을 그만두고 병원에만 매여 살고 있다. '없이 살아도 남에게 돈 꾸러 가지는 않는다'는 삶의 신조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벌써 빚만 5천만원. 어렵게 장만한 빌라 한채는 압류가 들어왔고, 밀린 병원비만도 1천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매달 부담해야 하는 병원비가 200만원에 달하니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그 와중에 인지기능이 손상돼 혼자 둘 수 없는 아들은 속도 모르고 "간병 안 해줘도 된다"며 혼자 있겠다고 자꾸 떼를 쓴다. 혼자 병원을 뛰쳐나가 동성로에서 헤매던 아들을 겨우 찾은 것이 벌써 몇번인데….
아무리 설명을 해 봐도 원래 자기 일은 스스로 알아서 척척 해냈고 누구보다 자립심과 자존심이 강했던 아들은 곧잘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린다.
"졸업하면 꼭 선박 관련 대기업에 취업해서 효도할 것"이라고 큰소리쳤던 상현이, 공무원이 되겠노라며 밤낮으로 공부에 매달렸던 세진이. 이 둘은 언제쯤이면 예전과 같은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제발 건강만 되찾으면 더 바랄 것이 없는데….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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