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째 가업 日이발소 장인정신에 매료…삼성 품질경영으로 승화
어느 날 저녁, 가로등도 없는 뒷길을 걷다가 길가 이발소에 들어갔다. 허술한 가게 입구에 '모리타'라는 문패가 붙어 있었다. 가위질을 하고 있는 40세 전후로 보이는 주인에게 별다른 생각 없이 말을 건넸다.
"이발 일은 언제부터 시작했소?"
"제가 3대째니까, 가업이 된 지 이럭저럭 60년쯤 되나 봅니다. 자식놈이 계속 이어주었으면 합니다만…."
특별한 뜻이 없는 잡담이었지만 예사말로 들리지 않았다. 패전으로 완전히 좌절하고 있어야 할 일본인인데, 담담하게 대를 이은 외길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투철한 직업의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호암의 자서전 '호암자전' 중에서)
1950년 호암은 경제시찰을 위해 일본에 들렀다가 우연히 도쿄 시내에 있는 모리타 이발소를 알게 됐다. 그는 하찮아 보일 수도 있는 이발소였지만 그 하찮은 일을 자식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어하는 일본 사람들의 투철한 직업정신에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장인 정신'과 유사한 일본의 '직인(職人) 정신'을 평생의 사업 신념 중 하나로 삼았다. 한 가지 일에 목숨을 걸고 그 분야에서 최고를 이뤄야한다는 것이다.
호암의 신념은 현실화됐다. 삼성은 제품 품질뿐만 아니라 서비스에서도 '역시 삼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모리타의 이발사
지난해 말 도쿄 시내 중심가 아카사카. 기자는 아침 일찍 '모리타 이용점'을 찾아나섰다. 호암의 60년 전 자취를 찾아서였다.
오전 9시 30분이 되자 문이 열렸다. 그리고 손님이 드나들었다. 1878년 개업한 모리타 이용점은 4대째 132년 동안 영업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발소 손님 이시이 코지(74)씨는 "서른살 때부터 이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고 있다. 전철을 타고 1시간을 와야 하지만 정성으로 이발을 해주는 이 이발소에서 머리를 다듬어야 마음이 풀린다. 대단한 이발소다"고 했다.
호암은 1950년 2월 모리타 이용점에 처음 들렀다. 그리고 이발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대대로 가업을 이어오는 풍토를 보고 감명을 받았다.
1950년 당시 호암은 도쿄, 오사카, 교토 등 여러 곳을 다니며 일본의 오래된 기업들을 직접 목격했다.
2차대전 중 연합군의 폭격 세례를 받아 패전 후 뼈대만 남은 가와사키중공업은 1878년 창업했다. 도쿄의 유명한 과자점인 도라야는 1592년 개업, 400여년 이상 과자 만드는 한길을 걸어왔다. 마쓰이라는 건설회사도 마찬가지. 1586년 창업한 이 회사는 400여년을 건설업에 몰두했다.
오사카의 과자점 스루가야는 1461년 창업했다. 도시락 가게 스이료켄 역시 130여년간 도시락을 만들어왔다.
호암은 이러한 장인정신이 패전국 일본을 다시 일으켜 경제대국으로 성장시킨 비결이라고 믿었다.
일본 기업들의 장인정신은 호암을 끊임없이 감동시켰다. 1964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대일 청구권 회담 때문에 일본에 들른 호암은 골프를 친 뒤 도쿄 스키치의 복어 요릿집인 후구겐 식당에 들렀다.
그런데 예약시간보다 1시간 늦게 호암 일행이 도착했다. 주인은 버럭 화를 냈다. 예약시간에 맞춰 복요리를 만들어놨는데 늦게 오는 바람에 맛을 버렸다는 것이었다.
호암은 무례한 주인의 태도에 황당하기도 했지만 이곳에서 일본 사람들의 철저한 직업정신에 또 한번 감명을 받았다. 건성으로 하지 않고 요리 하나에도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본 것이다.
◆장인정신이 최고를 만든다
호암이 삼성의 창업지 대구에 만든 제일모직. 1954년 창업한 제일모직 대구공장은 '품질 경영'이라는 글자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1960년대 초반부터 품질 관리에 노력했다.
제일모직은 1961년부터 각 생산팀별로 시험검사와 연구활동을 계속하면서 품질관리를 추진, 1965년 국내 최초로 국제양모사무국으로부터 울마크(Wool Mark) 사용허가를 받았다.
1968년에 이르자 제일모직은 무결점운동을 시작했다. 1975년 10월 제1회 전국품질관리대회에서 제일모직은 대상을 수상한다.
이 운동은 삼성의 모든 관련사로 퍼져나가 삼성이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일조했다.
호암은 장인정신을 '완전주의'로 발전시켜 나갔다. 삼성의 완전주의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확실하게 저마다의 책임을 다하여 건실한 삼성을 이끄는 정신'이라고 삼성은 밝히고 있다.
호암은 완전주의와 관련, 전사적 품질관리를 강조했다. 품질이라고 하면 흔히 제품의 품질에만 한정하기 쉽지만 서비스의 질, 기업경영의 질까지 넓은 의미에서 품질이라고 호암은 생각했다.
호암은 아랫사람에게만 완전주의를 강요하지 않았다. 기업인으로서 경영을 잘못해 부실기업을 만드는 것은 범죄와 다름없다며 호암은 스스로 완전주의를 실천하려 노력했다.
그 결과는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의 삼성'이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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