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의 대학과 책]청나라 정부의 조기유학 프로젝트 유미유동

입력 2010-01-06 07:48:57

국가교육의 대전략이 필요하다.

▨첸강·후징초/이정선·김승룡 옮김, 『청나라 정부의 조기유학 프로젝트 유미유동』(시니북스, 2005)

'공장을 세워 기기를 제조하고 학교를 열어 교습하는 것은 국력을 신장시키기 위한 터전을 닦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국으로 가서 학습하고 많은 생각을 모아 이익을 넓히는 것은 오래도록 크나큰 효험을 거두는 방법입니다. 서방인은 실제적인 효용에서 배우고 찾습니다. 사(士)든, 노동자든, 군인이든 학교로 들어가 공부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이치를 밝히고 기기를 익히며 몸소 실천합니다. 저마다 정신과 기술을 다 쏟으며 서로 가르치면서 달마다 해마다 달라질 것을 기약합니다. 중국이 저들의 장점을 흡수하려고 어느 날 갑자기 저들의 기기를 모두 사들인다 해도 그렇게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저들의 오묘한 비결은 정녕 두루 보고 익히지 않고서는 근본을 통찰할 수 없고, 세세한 내용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옛사람들은 "시골말을 배우려는 사람은 농장이나 산과 들 사이에 두어야 하며,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실제에 뜻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저들의 방법을 몸으로 깨쳐서 다른 데까지 확장할 수 있다면 오늘날 아등바등 구하는 것보다 훨씬 무궁한 경지까지 확충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청나라의 최고 전략가 쩡꿔판(曾國藩)의 이야기입니다. 중국의 어린 아이들을 왜 미국으로 유학 보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입니다. 『청나라 정부의 조기유학 프로젝트 유미유동』(시니북스, 2005)에 나오는 벌써 100년도 더 지난 고루한 문장이지만 지금의 우리 상황에서 한번 되새겨야 할 내용인 것 같습니다. 교육비가 가계지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조기 유학에 혈안인 현실이지만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는 오로지 대학 입학이 목적이고, 대학생은 취업 준비로 모든 시간을 보냅니다. 어떤 일자리에서 어떻게 일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당사자는 물론이고 부모도 사회도 국가도 계획이 없습니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취업통계에 현혹되어 대학을 이리저리 옮기고, 취업을 한 후에도 한두 푼 더 주는 직장을 찾아 수시로 옮겨 다닙니다. 그야말로 멀쩡한 아이가 교육과정 터널을 통과하고 나면 노마드(nomade), 즉 현대판 유랑민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는 '교육'이 실종된 한국 교육의 현실입니다. 그 원인은 국가적 차원의 교육 대전략(grand strategy) 부재에 있습니다. 한 어린이가 공적 교육과정을 거치면 어떤 인재로 양성되는지, 그 인재를 적재적소에 어떻게 배치하여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습니다. 해외 유학생 파견에 대한 배려가 전무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국가의 어느 분야에 얼마 규모의 인원을 파견해서 어떻게 양성해야 할지에 대한 방안이 없습니다. 무작정 시장 논리를 앞세워 개인적인 자율에 맡기고 있습니다. 교육을 가정에 일임한다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자유를 보장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국가의 책임 회피입니다. 국가 경영은 농사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수확할 작물의 씨를 뿌려놓고 거름을 주고 잡초를 제거해야만 가을에 알찬 열매를 수확할 수 있습니다. 봄날 마른 땅에 씨를 뿌리고 정성을 다해 가꾸는 것은 그 싹이 자라서 훌륭한 열매를 매달 것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이 바로 교육입니다.

'유동들은 어린 나이에 머나먼 타국으로 갔기에 행보가 종잡을 수 없고 그곳 습속에 물들더니 끝내 생각조차 본국과 멀어졌습니다. 외국의 좋은 기술을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할뿐더러 저들의 경박한 습속에 일찌감치 오염되어 유학의 초심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1881년 유학프로젝트 중단을 요구하는 상소문을 올렸던 청국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교육에 대한 믿음과 투자가 사라진 청국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제대로 된 계획, 과감한 투자, 엄격한 관리를 내용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교육대전략이 반드시 수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노동일<경북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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