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려 수다떨고 싶다" 처녀의 한 서린 절규
"낫기만 한다면 사채를 쓰더라도 수술을 받고 싶은 마음입니다."
김가희(가명·29·여·칠곡군 동명면)씨는 눈물을 훔쳤다. 당뇨와 신부전증으로 집에만 갇혀 감옥아닌 감옥 생활을 한 지 벌써 3년째. 김씨는 "나도 여느 아가씨들처럼 친구들과 어울려 수다도 떨고, 직장생활 푸념도 하며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김씨는 2004년 마트에서 일하다 갑자기 쓰러져 제1형 당뇨병(인슐린 의존형 당뇨병)과 신부전증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돌이켜 생각해보니 중학교 3학년 때 살이 20㎏ 이상 빠진 후 계속해서 어지럼증이 따라다녔다"며 "엄마가 당뇨가 심해 '나도 혹시…'라고 의심을 하긴 했지만 사는 게 바빠 병원 진료를 받아보진 못했다"고 했다. 지금은 하루 4번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 김씨는 "마트의 2교대 업무로 인해 병이 생긴 것 같아 직장을 바꿔보려고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땄었다"며 "그 때 배운 밑천으로 매일 스스로 주사를 놓고, 엄마에게도 놔주고 있다"고 했다. 김씨의 어머니 김애영(52)씨도 수십년째 당뇨와 신부전증을 앓고 있다.
현재 김씨는 바깥 출입이 힘든 상태다. 지난해 당뇨합병증으로 망막 수술을 받았지만 여전히 시력이 좋지 않고 기립성 대사장애(혈압이 떨어져 어지러운 증상)으로 인해 곧잘 비틀거리며 쓰러지기 일쑤다. 최근에는 상태가 더 악화돼 식사를 하는 것조차 힘들다고 했다. 김씨는 "위가 운동을 하지 못해 자꾸 토하고, 다리에 기력이 없어지면서 부축 없이는 혼자 걷기가 힘들다"고 했다.
병을 앓고 있는 두 모녀 만이 살다보니 살림은 엉망진창이다. 김씨는 "방 한 칸 마련할 돈도 없어 외삼촌 댁 2층에 살고 있다"며 "기초생활수급비로 매달 50만원을 받지만 주사 약값과 병원을 오가는 교통비로 30만원 이상이 들어 겨우 끼니만 잇고 살고 있다"고 했다.
이제 김씨가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것은 신장과 췌장 동시 이식. 이 소식을 듣고 김씨는 지난 가을부터 5년간 연락이 두절됐던 아버지를 수소문해 찾았다. 김씨는 "어릴 적 아버지가 사업을 하다 부도가 난 뒤 빚쟁이들의 독촉에 시달려 피해 살기 시작한 것이 이별이 돼 버렸다"며 "함께 살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정도 사라졌고, 아예 소식조차 끊어지게 됐다"고 했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아버지는 딸의 투병 소식에 기가 막혀했다. 차량으로 만두 행상을 하며 살았던 아버지는 "미안하다"며 "장기가 일치하기만 한다면 기꺼이 이식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신장은 이식에 별문제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고, 췌장은 현재 1차 검사결과까지는 통과한 상태.
하지만 김씨의 형편으로는 이식비용을 마련할 길이 없다. 4천만원에 달한다는 병원 측의 설명에 김씨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김씨는 "지난해 눈수술을 받는데 800만원가량의 치료비가 들어 시집간 여동생까지 카드빚을 끌어다 대야 했다"며 "이제 더 이상 돈을 빌릴 곳도 마땅치 않다"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벌써 수술 가능 여부를 검사하는데만도 400만원이 들었단다.
김씨는 병마와 싸우는 것 외에도 '외로움'이라는 병을 하나 더 앓고 있다. 바깥 출입을 할 수 없다 보니 친구들과의 관계도 멀어진 것. 김씨는 "친구들은 안부삼아 "괜찮냐"고 물어보는 말이 괜한 자격지심인지 나에게는 화살이 되어 가슴에 꽂혔다"며 "같은 설명을 수십번, 수백번 하는 것도 힘들고 얼굴 한번 보기도 힘들다 보니 친구들과의 연락이 모두 끊어졌다"고 했다.
아직은 꿈많은 20대 막바지를 지나고 있는 김씨. 그녀는 "무슨 수를 써도 병이 나을 수만 있다면 나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한번 살아봤으면 좋겠다"며 "벽에 걸린 여동생의 결혼식 사진처럼 웨딩드레스도 한번 입어보고 싶다"고 했다. 2010년에는 그녀의 간절한 꿈이 이뤄질 수 있을까.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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