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 '범생이'보다 '별종'이 낫다

입력 2009-12-28 10:57:03

성탄절에다 송년회 모임으로 왁자한 세모에 한결 더 외로운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대학 선택과 자신의 장래를 홀로 고심하고 있을 대학 입시생들입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둡고 긴 터널에 캄캄하게 갇혀 있는 기분일 그들에게는 작은 길잡이 등불 같은 격려나 위안이 필요할 것입니다. 성적이 잘 나온 학생이든, 좀 부족하게 나온 학생이든, 어차피 이 나라의 미래를 손에 쥘 우리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봅니다.

'세계적 기업 삼성전자는 어떤 인재를 원할까요?' 답을 주기 전에 지난주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학술잡지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가 뽑은 세계 최고 경영자 100인 중 2위에 뽑힌 삼성전자 윤종용 상임고문의 얘기를 해봅시다. HBR의 심사는 전 세계 글로벌 기업 1천200개 중에서 뛰어난 1천999명의 CEO를 1차로 뽑아, 그 중에서 1997년 이후 10여 년간의 경영 업적으로 순위를 가려 뽑는다고 합니다. 윤 고문 경우 지난 10여 년간 삼성전자의 시장가치를 1천270억 달러(150조 원) 수준으로 끌어올린 역량을 인정받아 2위를 차지했습니다. 윤 고문은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29세 때 삼성전자 최초로 흑백TV를 혼자서 만들어 신임을 얻었지만 VCR 개발 때는 당시 이병철 회장의 조기 개발 욕심을 못 따라가 네덜란드 필립스사로 떠나 유랑 생활(?)을 하는 좌절의 시기도 겪었습니다.

그런 그가 말하는 인재(人才)형은 이렇습니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성실하고 말 잘 듣고 부지런한 사람이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창의성과 속도가 생명이므로 공부만 하는 평범한 '범생이'(모범생)보다 끼와 개성이 있는 '별종'(別種)이 낫다." 세계 최고 CEO의 인재 보는 철학이 그렇다 보니 삼성전자에는 소위 명문대 출신 비중이 다른 상장사에 비해 매우 낮습니다. 임원 중에 서울대 등 3대 명문대 출신은 겨우 20%, 반면 지방대 출신은 30% 선이라고 합니다.

삼성전자에서 출신 지역이나 대학을 묻는 것은 금기 사항이라는 말들도 합니다. 딱 40년 전 종업원 36명짜리 회사였던 삼성전자가 40년 만에 200만 배 가까운 성장을 한 원동력은 그처럼 학벌 중심의 아날로그형 인재보다 끼가 있는 창의형 인재를 중용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됩니다.

역사를 변화시킨 위대한 인물들은 많습니다. 군주나 정치가, 군인, 예술가 모두 위대합니다. 그러나 역사를 '발전'시킨 위대한 인물들은 대부분 우리가 이름도 잘 기억 못 하는, 그늘에서 인류의 삶을 혁신시켜온 사람들입니다. 세계 최초의 IC를 개발한 킬비, DNA 유전자 구조를 발견한 왓슨, 전자계산기를 개발한 에커트,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바딘과 쇼크리…. 윤 고문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광대한 영토를 정복했던 알렉산더와 칭기즈칸, 나폴레옹은 지도를 잠시 바꾼 역할 외엔 인류의 삶에 혜택을 준 것이 별로 없다"고. 맞는 말이지요. 윤 고문은 또 뛰어난 젊은 인재들을 의대 법대 등으로 쏠리게 하고 기술 인력은 러시아, 인도, 미국 등에서 데려다 충당하면서 해외 기술에 특허료만 수십조 원을 주고 있는 것에 가슴을 칩니다.

대학 입시생 여러분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성공된 삶, 존경받는 인물의 척도는, 자기 이익 대신 얼마만큼 많은 사람과 환경, 삶에 혜택과 행복-이익을 주었느냐에 정비례한다"고. 그렇게 본다면 세상에 빛과 소리를 만들어 인류 삶의 질을 높여준 에디슨이나 벨 같은 과학자, 음악을 통해 수십억 인구에게 감동을 주는 베토벤, 모차르트 같은 천재 예술가, 문자를 만들어 민족의 정신 문화를 일깨운 세종대왕 같은 삶이야말로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앞으로의 세상은 수년 사이에 수백 가지의 직업들이 사라지고 생겨난다는데 눈앞의 직업, 언제 뒤바뀔지 모르는 명문 대학 순위가 얼마만큼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오늘 잠시 답안지 위에서 뒤처진 거리는 여러분의 긴 인생에서 0.1㎜의 거리도 안 되는 차이일 뿐입니다. 끼와 창의성이 담긴 큰 꿈을 꾸십시오. '별종'의 꿈에는 정해진 크기나 공식이 없습니다.

金 廷 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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