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세종시에서 얻은 교훈들

입력 2009-12-24 10:53:24

세상 모든 일에는 배울 게 있는 법이다. 그 일이 크고 작은 것을 떠나 사람은 일을 통해 교훈(敎訓)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교훈을 얻은 사람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은 물론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 반면 교훈을 얻지 못한 사람은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올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세종시 문제도 마찬가지다. 세종시 수정을 둘러싼 수많은 논란과 주장, 추이 등을 통해 대구경북은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 교훈들은 이 지역 발전을 위한 자양분(滋養分)이 되기에 충분하다.

세종시로부터 얻은 교훈을 언급하기 전에 대구경북 사람들은 세종시에 대한 명확한 인식부터 갖는 게 중요하다. 백년대계, 효율이란 수식어를 달고 있지만 서울'경기도에 사는 세종시 원안 수정론자들의 입장은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기득권(旣得權)을 내줄 수 없다는 얘기다. 9부 2처 2청에 이르는 중앙 부처를 세종시로 옮기면 수도권에 이런저런 피해가 우려되는 만큼 행정 중심 도시가 아닌 경제 중심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속내인 것이다.

교육과 과학이 중심이 되는 경제도시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지방으로 갈 것을 세종시로 가져가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말은 냉정하게 보면 실현하기 힘든 약속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 이상 대구경북을 비롯한 다른 지방으로 갈 예정이거나 또는 이미 있는 기업'기관'대학'병원'연구소 등을 세종시로 집어넣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울에 있는 중앙 부처 대신 지방 몫인 떡을 세종시에 갈라주는 꼴이다. 지방으로 지방을 제압하는 이방제방(以方制方)에 다름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영호남을 비롯한 지방이 정부의 세종시 수정에 일제히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정운찬 총리 등 정부 인사들이 세종시 수정안 방향을 언급할 때마다 대구경북은 우려하고 격분했다. 세종시 수정으로 이 지역에 막대한 피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를 뒤집어 본다면 그만큼 대구경북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첨단의료복합단지, 혁신도시, 국가공단 등 수많은 프로젝트를 대구경북이 추진하고 있지만 세종시란 암초(暗礁)에 좌초되기 십상인 것이다. 튼실한 프로젝트들이라고 자화자찬(自畵自讚)하는 것은 우리끼리일 뿐 중앙 정부의 손가락 하나에 따라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어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을 발전 프로젝트들을 마련하고 이를 굳건하게 추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사실을 세종시는 대구경북에 가르쳐주고 있다.

세종시가 일러준 또 하나의 교훈은 지방 언론의 존재 의미와 역할이다. 정부가 세종시 수정 주장을 들고 나왔을 때 일부 전국지들과 방송은 정부 입장을 그대로 중계하다시피 했다. 세종시 원안을 주장하는 사람은 백년대계를 내다보지 못하는 우매한 사람으로 매도할 정도였다. 이들의 눈에는 행정 중심 도시 무산으로 눈물을 흘리는 충청권 주민들은 물론 세종시 수정으로 피해를 우려하는 지방민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세종시 수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지고 나선 것은 지방 언론이었다. 지방 언론사들이 설자리를 잃고 수도권에 있는 언론사들이 대한민국 여론을 독식할 때 지방은 존재하기 힘들다는 교훈을 세종시는 극명하게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새겨야 할 교훈은 대구경북의 발전은 결국 '사람'에 달렸다는 사실이다. 세종시 수정으로 이 지역에 피해가 뻔히 우려되는데도 일부 단체장이나 국회의원들은 원안 수정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은 고사하고 지역의 의견을 청와대나 중앙 부처에 제대로 전달조차 못하는 등 실망스런 행태를 보였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눈치나 볼 뿐 이 지역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외면한 것이다. 대구경북 발전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소신, 그리고 이 지역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진 사람을 리더로 뽑아야 한다는 사실을 대구경북은 깨달아야 한다.

세종시 문제가 다소 잠잠해졌지만 세종시는 활화산(活火山)이다. 정부가 내년 1월 최종 수정안을 내놓으면 이 화산은 다시 맹렬하게 폭발할 것이다. 대구경북은 세종시로부터 얻은 교훈을 토대로 세종시 문제에 대한 현명한 판단과 선택을 하고 결단을 해야 할 것이다.

李大現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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