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인물] 日 A급 전범 도조 히데키

입력 2009-12-23 07:03:50

1948년 오늘 A급 전범 도조 히데키가 도쿄 스가모 구치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태평양전쟁 전범 처리를 위해 설치된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6명과 함께. 그는 도쿄재판 내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형 당일에는 한술 더 떴다. "욕망의 이승을 오늘 하직하고 미타(彌陀) 곁으로 가는 기쁨이여"라는 유언시를 남겼다. 숭고한 목적을 위해 매진하다 뜻을 이루지 못한 순교자라도 되는 것처럼 포장한 것이다.

그는 육군대신으로 있던 1941년 1월 "살아서 포로가 되어 욕(辱)을 당하지 말라"는 전진훈(戰陳訓)을 만들어 많은 일본국민들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었다. 자신도 그렇게 죽을 기회가 있었지만 비겁하게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도쿄재판 체포조가 들이닥치기 직전 권총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심장쪽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는데 총알이 빗나간 것이다. 불가사의였다. 의도적으로 오(誤)조준한 것이 아니라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관자놀이를 쏘는 확실한 방법도 있었다. 당시 미국 신문들은 도조의 자살 실패를 '사나이의 치욕'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우익은 이런 자를 신으로 모시며 오늘도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정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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