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탐탁잖아하는 정책을 정부나 정권이 저네들 생각대로 끌고 가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독재의 힘으로 반론(反論)을 눌러 버린 채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방법, 그리고 아전인수식 통계나 논리를 그럴듯하게 내세운 뒤 끌고 가는 방법이다. 어느 쪽 방법을 쓰든 권력이 원하는 쪽으로 몰아갈 수는 있지만 공통되는 조건 하나가 따라붙는다. 국민들이 좀 '꺼벙'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독재에 저항하는 정의감과 용기가 없어야 하고, 이상한 논리나 숫자 따위를 내걸어 '이게 이런 거니 따라오라'고 하면 숫자의 허구나 논리의 약점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넘어갈 만큼 '꺼벙'해야 한다는 얘기다. 백성이 깨어있으면 오판된 정부의 실책이나 숨은 야심의 폐해를 피해갈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지난주 세종시 이전 논란을 놓고 어느 연구원과 학회가 내놓은 주장도 깊이 들여다보면 원안을 꺼리는 정부 쪽 입맛에 맞춰진 논리다. 9부 2처 2청의 정부 기관을 세종시로 옮기면 5조 원 가까운 손실 비용이 생겨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장관들을 수시로 만나야 하는데 세종시로 옮기면 오가는 시간이 많이 걸려 불편하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과연 그럴까? 대통령이 꼭 장관을 빈번히 만나야만 나랏일이 잘 굴러가고 정부 부처들을 청와대 코앞에 둬야 국정 효율이 더 높아진다는 논리를 두 가지 사례를 보면서 생각해보자.
빌 게이츠와 함께 세계 최고의 갑부 CEO인 워런 버핏(Warren Buffet)은 자신의 주력 기업인 헤더 웨이사(社)에 63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63명의 자회사 사장들에게 1년에 단 한 번, 그것도 편지 한 통씩 보내는 것으로 1년 몫의 그룹 지휘 업무를 끝낸다. 주기적인 회의는 물론 없다. 사장 소집도 없다. 오직 '당신(자회사 사장)이 담당하는 고객(이명박 대통령으로 본다면 국민)에게 어떤 손해도 입히지 말라'는 지침만 내리고 끝이다. 그리고는 집에서 TV를 보거나 한가하게 팝콘을 튀겨 먹으면서도 세계를 흔들며 최고 갑부의 위치를 지켜내고 있다. 장관 자주 만나야 나랏일 잘된다는 우리 쪽 논리와는 멀어도 한참 멀다.
또 하나,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 그는 단일 건축물로는 미국 펜타곤 다음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궁전(청와대 격)을 지은 뒤, 궁전 광장 건너편에 반월형 호화 아파트 단지를 만들어 장'차관 등 권력 기관 고위직들을 코앞에 모아다 집단 거주시켰었다. 효율과 감시 등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는 효율성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부도덕과 비양심 때문에 국민의 손에 의해 처형됐다. 진정한 통치 효율은 장'차관과 얼굴 맞대는 효율보다 양심과 도덕성, 신뢰에서 더 큰 효율이 나온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다.
약속(원안)을 지키면 공무원 출장비 등 손실비용이 평균 4조7천억 원이라는데, 그렇다면 선거 표 얻으려고 빈 약속을 남발하는 부도덕과, 권력 쥔 뒤엔 다시 뒤집는 불신 세태를 보며 '지도층의 거짓 약속도 뒤집으면 그만인 세상'이란 부도덕한 가치가 번질 때 발생될 '병든 사회의 손실 가치'는 얼마라는 얘긴가. 국가와 국민정신 속에 부도덕과 약속의 신뢰가 무너져 있을 때 파생될 손실 가치를 대한민국 국격과 국민의 자긍심에 걸맞게 계산한다면 5조는커녕 50조 원으로도 모자랄 수 있다. 원안+알파로 얻을 영남'충청권의 정치'경제적 이익까지 계산하면 더더욱 손해다. 통치 효율도 마찬가지. 버핏처럼 참모(장관)를 믿고, 시시콜콜 입대지 않으며 독립성과 창의적 책임을 부여하면, 코앞에 두고 불러대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일 수 있다. 도덕과 신뢰, 양심의 가치는 빼버리고 돈(행정 효율)으로만 따진 4조 원 논리는 국민을 꺼벙하게 본 어설픈 설득이었다.
나라와 국민이 지녀야 할 도덕성 가치를 더 소중히 여길 때 정치 설득도 제대로 통한다. 그걸 모르고는 총리의 민심 다지기 발품은 구두만 닳을 뿐이다.
예산안 늑장 처리 최고, 예산 심사 지연 42년 만에 최고, 농성 기간 기록 최고의 국회 꼴도 바로 도덕과 양심을 소홀히해 온 탓이다.
金廷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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