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갤러리] 신비한 탄생 / 산드로 보티첼리

입력 2009-12-19 07:27:32

예수의 탄생과 죽음, 날카로운 은유로 묘사

제목: 신비한 탄생

작가: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

제작연도: 1500년

재료: 캔버스 위에 템페라

크기: 108.5 × 75㎝

소재지: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

이 그림은 예수의 탄생을 주제로 하는 여러 작품 중에서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는 것 중 하나일 것이다. 상당한 인문주의적 교양을 쌓고 있었던 보티첼리는 일찍부터 고전과 고대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여 과 등 당시로서는 이교도적이라 할 수 있는 고대신화를 주제로 한 많은 작품들을 제작하였다. 그러나 프랑스 군의 침공과 사보나롤라(Savonarola)의 등장으로 피렌체 미술이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할 때, 그 역시 신비주의적 경향을 더하며 점차 제작에서 멀어져 가다가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화가로서의 생활을 거의 그만두게 된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것은 지상에서의 신국(神國) 건설을 부르짖었던 사보나롤라가 '허영의 소각'이라는 미명 하에 다시는 구할 길이 없는 수백 점의 필사본, 책, 회화, 조각들을 파괴하였는데 보티첼리는 이 과격한 종교개혁가의 열렬한 추종자였다는 것이다.

그의 그림 중 유일하게 서명이 있는 이 작품의 주제는 예수의 탄생이다. 그러나 같은 주제의 다른 작품들이 예수의 탄생이라는 단일 사건을 단순하게, 그러나 거룩하게 전하고 있는데 반해 이 그림은 예수의 탄생을 종말론과 연결시키고 있다. 묵시록이 그러하듯이 이 작품도 수많은 은유와 상징을 담고 있는데 우선 중요한 내용들만 살펴보자.

화면 중앙의 동굴과 마구간을 합쳐 놓은 듯한 장소를 배경으로 아기 예수와 기도를 하는 성모, 그 옆에 얼굴을 파묻고 자고 있는 요셉을 배치하고 있는데, 다분히 작위적인, 자연스럽지 못한 설정이다. 두 가지의 설명이 가능하겠다. 먼저 아마 작가는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빛으로 오신 예수와, 가난한 이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오신 예수라는 두 의미를 하나의 소재로 표현하였을 수 있다. 또 다른 해석은 예수가 죽은 뒤 묻힌 동굴, 즉 무덤을 묘사한 것으로 죽음을 예고하고자 하였을 수도 있다. 그림 하단에 보이는 탄생 장소에까지 이르는 길이 지그재그로 되어 있는데 아마 예수가 겪어야 할 고난과 수난을 의미하는 동시에, 신앙의 길에 놓인 고된 난관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지붕 위에는 세 천사가 무릎을 꿇고 책을 펼쳐 구세주의 탄생을 노래하고 있는데 3의 숫자는 잘 알려진 대로 삼위일체를 상징하며, 예수가 바로 삼위일체 가운데 한 분인 성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 이들이 입은 옷의 흰색과 초록, 붉은색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라는 그리스도교의 세 가지 기본 덕목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림의 좌우로는 '신비한 탄생'의 두 증인 집단, 즉 동방 박사들과 목동들이 각각 천사에 이끌려 예수를 경배하고 있다. 그림의 상단에는 각각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 가지를 든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완벽함의 상징인 원을 그리며 탄생을 축하하는 춤을 추고 있으며, 하단에는 세 천사와 세 인간이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데 아마 신과 인간의 화합을 그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설명적인 화면 구성, 비현실적으로 선명한 색상, 내용 전개를 위한 부자연스러운 상황 설정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이 그림은 '마치 창문을 통해 보는 것처럼'이라는 르네상스의 지향점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오히려 중세로 되돌아가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만년의 보티첼리가 이성으로 대표되는 르네상스 화가로서의 길보다는 신앙인으로서의 길을 우선시하였다는 방증이 될 것이다.

권기준 대구사이버대 미술치료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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