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혹시…홧김에 이혼하려 했나요?
1995년부터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지은이 김영희씨의 '이혼조정 이야기'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 어떻게 이혼을 막았는지, 불가피하게 이혼하더라도 어떻게 서로간의 상처를 줄였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은이는 높은 가사조정 성공률로 2003년 대법원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았고, '이혼 숙려제'를 도입하는데도 큰 역할을 한 사람이다.
이혼하겠다고 찾아왔다가 김영희씨와 상담을 통해 화해한 부부는 많다. 부부간 갈등, 장모와 사위 갈등, 시어머니와 며느리 갈등, 성격의 차이, 성문제 등 이혼하려는 이유는 다양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례를 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상담을 통해 화해한 부부는 대체로 '꼭 이혼하겠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저 홧김에 이혼을 생각했다가 상담을 통해 '숨겨진 본심'을 깨닫고 화해하는 것이다. 이혼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은 이혼을 요구하는 이유나 싸우는 방식이 달랐다. '뚜렷하고 큰 이유'가 있는 부부싸움은 그저 부부싸움일 뿐이다. 그러나 이유 없이, 사소한 이유로 자주 싸우는 부부는 상대방을 정말로 싫어하는 듯했다. 이런 부부는 어떤 상담으로도 이혼을 막기 어렵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이혼하지 않고 살 수 있나'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다. 그러나 현재 심각하게 갈등 중인 부부가 읽기보다, 결혼을 앞두고 있거나, 재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더 좋을 책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결혼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결혼한다. 그래서 이혼하는 사람이 많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혼'은 비록 막바지 단계이기는 하지만 '결혼생활의 한 부분'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결혼하지 않은 사람, 혹은 금슬이 좋은 사람은 잘 모르는 '결혼의 이면'을 볼 수 있다. 결혼생활은 결코 '자기, 사랑해!'라는 속삭임 혹은 자식의 천진한 웃음소리로 가득 차 있지 않다. '자기, 사랑해!'라는 말은 짧고 '지겨워!'라는 탄식은 길지도 모른다. 웃음소리는 일순간이고 사시장철 접시 깨지는 소리가 진동할지도 모른다. 그 모든 것이 결혼생활의 부분임을 분명하게 안 다음에 결혼해야 실패가 적을 것이다. 재혼한 한 부부의 싸움 사례를 들여다보면 결혼생활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 엿볼 수 있다. 초혼도 아니고 첫 결혼에 실패한 다음 '잘해보겠다'는 굳은 다짐까지 한 사람들조차 이렇게 싸운다.
"그러니까 이혼했겠지, 안 봐도 비디오다." 남자가 여자를 때리고, 여자는 왜 때리느냐고 항변한다.
"너 같은 인간 때리지 않고 살 놈이 세상에 있겠냐? 병신 안 된 것만도 다행이지." 남자의 폭언에 여자는 지지 않고 항변한다.
"그러게 네 여편네가 바람을 피웠겠지. 거지 같은 성질, 어떤 년이 받고 살아?"
이런 대화는 극단적인 이야기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혼까지 생각하는 부부들은 저렇게 싸운다. 저 싸움이 어디 사람이 할 싸움인가? 그런데 사람이 저렇게 싸운다. 저 장면이 바로 결혼생활의 적나라한 한 장면이다. '여보! 사랑해!' 라고 속삭이던 남자와 여자가 저렇게 싸우는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 평범한 남녀 간에도 남편과 아내의 인식 차이는 크다. 여자는 사랑한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듣기를 원하고, 남자는 잠자리에서 잘 해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대체로 여자는 쾌감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기 위해 성관계를 갖고, 남자는 쾌감을 주고받기 위해 성관계를 갖는다. 여자는 남자가 오며가며 엉덩이를 두들겨 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살포시 안아주는 스킨십을 원한다. 성관계 후에는 바로 돌아눕거나 일어나기보다 손이라도 잡아주기를 원한다. 그런데 남자들은 대체로 그런 일에 별 관심이 없다.
남자는 아내가 '당신이 최고다'며 칭찬해주기를 바라고, 간섭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내는 남편이 기계처럼 돈을 잘 벌어오고, 집에 일찍 들어와 아이들과 놀고, 집안일을 거들어주기를 바란다. 밖에서 일하고 들어온 남편은 '아내가 그 많은 시간 동안 집안일을 하지 않고 대체 무엇을 하기에 나보고 도와달라는 말인가' 불만을 터뜨린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두 사람 문제 외에 양쪽 집안문제, 자녀문제 등 결혼생활이 넘어야 할 산은 높고 험하다. 이걸 모르거나 외면하니 그처럼 많은 남녀들이 결혼하고, 그처럼 많은 부부가 이혼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혼에 앞서 심사숙고하고 화해의 길을 모색하라'고 말하는 이 책은 역설적이게도 '함부로 결혼하지 말고 심사숙고해라'는 이야기처럼 읽힌다. 242쪽, 9천500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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