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칼럼] 민주운동을 돈으로 셈하다니

입력 2009-12-14 10:55:39

광우병 촛불시위가 한풀 꺾이고 났을 때 '한국이 세계 1위인 별난 것들'이란 제목의 풍자가 떠돌았었다.

'세계 최고' 거리는 대충 이런 것들이었다. '전기가 잘 들어오는데도 세계에서 양초를 제일 많이 소비하는 나라' '제멋대로 짜 만든 뉴스 만들어 전 국민에게 마구 방영해도 아무도 책임 안 지는 나라' '대통령 알기를 초등학교 반장 정도로 알고 경찰을 허수아비처럼 얕잡아 보는 나라' '공산국가도 아닌데 좌파들이 판치는 나라'….

그 중에서 정곡을 찌른 풍자는 국회의원들을 비꼰 풍자로, '하는 짓거리나 실적에 비해 일당(日當)이 최고로 비싸게 치이는 나라'였다.

민생 법안 등 심의는 손도 안 대고 있으면서(4천732건 적체) 제 지역구에 생색 낼 예산 증액 요구액은 9조 원이 넘는다는 요즘의 국회를 보노라면 '세계 최고의 비싼 일당' '세계 최고의 이상한 국회'란 비아냥이 빈말로 들리지 않는다. '이상한 국회'의 '이상한 정신세계'는 더더욱 이상하다.

2'28민주화운동 지원 예산의 경우를 보자. 정부와 행정안전상임위에서 통과시킨 2'28 기념관 건립 국고 지원 비율(80%)을 예결위를 앞두고 60.3%로 깎아야 한다며 제동을 걸고 있다. 그들(전문위)의 주장은 2'28 기념관 국고 지원 비율이 마산' 부산 등에 비해 너무 높으므로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광주 5'18 기념 문화관 건립 때 국비 지원을 100%로 했었던 사실은 언급하지도 않고 있다.

2'28민주화운동은 60.3%짜리 민주운동이고 5'18광주항쟁은 100% 수준의 민주운동이라는 논리로 오해될 수도 있는 예산 삭감 논리다. 더구나 예산 지원 규모를 % 비율로 단순 비교하는 것은 더더욱 형평성에 어긋난다. 그들 주장대로 따져도 대구 2'28 기념관 경우 총 사업비가 100억 원이었으니 80% 다 들어줘 봤자 80억 원이다. 반대로 광주 5'18 기념 문화관에 준 예산은 162억 원, 대구 2'28의 두 배가 넘는다. 마산3'15의거와 부산민주항쟁도 50~56%라지만 당시 요구액이 133억~160억 원이었으니 실제 지원된 예산은 양쪽 다 약 80억 원 선이었다.

유독 대구 2'28 예산만 적거나 같은 액수인데도 %가 많으니 적으니 딴죽 걸고 있는 것이다. 형평성은 물론이고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정신적 가치를 돈(예산)의 비율로 비교하고 재단하는 자체부터 민주정신을 욕보이는 것이고 지역 논란을 부추기는 망국적 논리가 아닐 수 없다.

건국 이후 최초로 고교생들이 독재정권의 부정부패에 항거해 일어났던 2'28민주의거는 사실상 뒤이어 일어난 3'15, 4'19, 5'18등 민주운동의 효시였음에도 국가 지원은 거꾸로 가장 늦게 받았다. 그것도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2'28 40주년 기념식에 참석, '2'28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효시'라고 선언하고 200억 원 지원을 약속했던 게 처음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민주운동의 효시'라며 공약한 그 돈조차 아직 78억 원은 9년째 못 받고 있다. 노 정권 때도 5년 내내 계속 떼먹고 넘어갔다. 지금 뒤늦게나마 겨우 80억 원 지원해 달라는데 그걸 깎아야 한다고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못 받은 78억 원을 생각하면 사실상 이번 80억 원은 신규 지원이 아니라 10년 전 대통령이 약속한 돈을 받는 셈이다. 따로 100억 원쯤 더 타내도 공평한 민주화사업 지원이 될까 말까다.

표 얻는 선심 예산은 9조 원이나 서로 타내려 아웅대는 판에 현대사 최초의 민주운동의 효시라는 대구 어린 학생들의 민주의거 정신은 돈 깎아내리기로 폄하하는 국회의 정신적 황폐를 무엇으로 심판해야 할 것인가. 10년 세월 이리저리 정치, 경제, 문화, 교육 할 것 없이 치이고 눌리고 소외돼 왔던 대구, 이제는 민주의거 정신마저 돈으로 모욕당하고 역사적 긍지를 짓밟혀야 하는가. 대구 국회의원들이 몇 명인가! 대구정신의 뿌리인 2'28 정신과 그 정신을 기리고 물려줄 기념관 짓자는 예산 하나 못 지킨다면 금 배지가 부끄럽다. 4만여 2'28 회원들이 지켜볼 것이다.

金廷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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