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카페] 12월이 가기 전에 하고 싶은 일

입력 2009-12-12 09:00:00

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글을 보내주신 분 중 한 분을 뽑아 패션 아울렛 올브랜 10만원 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원고 분량은 제한 없습니다. 많은 사연 부탁드립니다.

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체육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박해옥(대구 달서구 송현1동)

다음 주 글감은 '추억의 크리스마스'입니다

♥ 12월이면 그리움·보고픔으로 가득

성모당 뒷담 길을 걷고 있었다. 그날따라 비는 내리고 낙엽은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봄날의 푸른 잎과 꽃향기는 다 사라지고 나무에는 앙상한 가지만 남겨둔 채 낙엽이 수북이 쌓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치 우리네 인생살이를 보는 것만 같았다. 나는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한참을 걸었다. 오랜만에 비를 맞으며 걷는 기분은 왠지 나쁘지만은 않았다. 어느덧 성당 입구에 거의 다다랐을 때, 노란 국화꽃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나는 언제부턴가 국화꽃을 보면 먼저 간 친구 생각에 가슴이 울컥해지곤 했다. 문득, 몇 달 전 친구들과의 모임이 떠올랐다.

지난 8월, 암산 유원지에서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던 친구들이 33년 만에 만나는 귀한 시간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일찍 모여서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지만 나는 퇴근이 늦어 조금 늦게 안동으로 향했다. 안동역에 도착하니 버스는 끊기고 밤이 너무 깊어져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나의 전화를 받고 친구들은 흔쾌히 안동역으로 마중 나왔다. 차를 타고 가면서 반가운 마음에 우리는 수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때 부산에 살고 있는 친구가 했던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그 친구는 노후에 자신의 집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괜스레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고, 그 친구가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모임 장소에 도착해 즐겁게 하루를 보내고 헤어졌다.

그리고 얼마 후, 추석을 보낸 지 나흘째 되던 날 한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부산 친구가 이 세상을 먼저 떠났다고. 순간 온몸이 굳어버린 것만 같았고, 나는 많은 생각에 잠겼다.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그 친구를 통해서 인간은 외롭고 고독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벌써 올해가 저물어 간다. 올해가 가기 전에 먼저 간 친구의 아픔도, 나의 아픔도 내리는 흰 눈 속에 묻어 버리고 그리움과 보고픔으로 서로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김귀분(대구 중구 남산3동)

♥ 올해는 미뤄뒀던 목덜미 점 뽑고 싶어

올 여름 버스를 타고 외출 중 뒷좌석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내 목덜미 옷을 만진다. 무심결에 고개를 돌렸더니 할머니께서 뭐가 묻은 게 아니고 새댁 목 뒤에 점이 보여서 그랬다면서 밖으로 노출되어 있으니 보기 싫다면서 뽑으라고 했다.

나도 외출할 때 조금 파진 옷을 입을 때면 신경이 쓰이는 점이었기에 밴드를 붙여 감추고 외출할 때가 많았다. 남들은 얼굴 성형도 잘하는데 점 하나 가지고 망설일 필요가 있나 싶어 이참에 뽑아 버리기로 결심했다. 동네 성형외과에 상담을 하러 갔다. 성형외과에 가 보니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참 많았다. 의사 선생님이 목덜미 점을 보더니 미련스럽다는 듯 웃으시면서 날짜를 정해 주셨다. 그렇게 점 뽑기로 되어있던 날, 후유증을 생각해서 샴푸를 두 번이나 해가면서 깨끗이 머리를 감고 말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파티마병원 응급실이라는 아버님 전화에 점 뽑는 걸 뒤로하고 병원으로 달려갔고 병원 신세를 져야만 하는 어머님 병 간호를 위해서 점 뽑는 걸 미뤄뒀었다. 올 12월이 가기 전에 점을 뽑고 내년엔 목덜미가 훤하게 보이는 옷을 입어보고 싶다.

이동연(대구 북구 복현2동)

♥ 서른 오기 전 친구들과 여행가고 싶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이고 12월이다. 나에게 12월은 왠지 모르는 설렘과 따뜻함이 느껴지는 달이다. 해마다 마지막 한 장의 달력이 펄럭거릴 때면 만감이 교차하고 그래서 12월은 마무리와 시작이 함께 되는 달이다.

서른이 오기 전 친구들과 특별하게 보내고 싶어 '굿바이 20대 여행'을 하기로 했다. 올해 29세인 친구들과 마지막 주에 여행을 떠나기로 하고 숙박과 교통편 예약을 끝마쳤고, 많은 시간이 남았는데도 매일 계획을 짠다는 핑계 삼아 시시콜콜한 문자를 하루에도 몇 통씩이나 주고받는, 아직까지는 풋풋한 20대이다.

여행이라면 항상 설레고 기대되지만 올해는 '굿바이 20대 여행'이란 타이틀로 떠나는 여행이라 더 소중한 듯하다. 이번 여행을 통해 20대를 잘 마무리하고 다가올 30대를 멋지게 맞이하면서 자신을 돌아볼 시간도 함께 가지며 우리들의 우정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무슨 일 앞에 항상 마지막이라 생각하면 뜻 깊고 더 간절한 것 같다. 모두가 못다 한 일들을 마지막 12월엔 꼭 이루시길 바란다.

강민정(대구 남구 봉덕3동)

♥군시절 짝사랑한 아내와 그 때 생각하고...(사진)

짝사랑과 외사랑은 차이가 있다. 난 그녀를 2년 동안 짝사랑했고 3년 동안 외사랑했었다. 이 모든 사랑이 모아져 있는 곳, 그리고 모아진 사랑을 몽땅 그녀에게 바쳤던 곳이 바로 내 군 생활이었다. 난 수년에 한번씩은 12월에 백골 부대를 다녀온다. 내가 군 생활을 했던 곳은 강원도 철원이다. 부대 자체가 내 사랑의 기념관이고 내 역사의 박물관이다. 눈이 내리거나 겨울비가 내리기만 하면 소대장실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수 시간 동안 그녀 생각만 했다. 부대 앞 졸졸 개울물 소리를 그녀의 삐삐 음성 메시지에 남겨 놓고, 눈밭길 30분을 달려가서 들었던 그녀의 삐삐 음성의 답에는 내 마음을 못 받아준다는 그녀의 냉엄한 목소리뿐이었다. 화이트데이의 예쁜 사탕을 구하기 위해 군 위수지역을 이탈하기도 했고, 빨간 석양녘 철책선 초소 지붕에 앉아서 사랑의 아픔을 맛보게 했던 그녀는 내 초라한 외사랑과 짝사랑이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결혼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녀와 나 사이에 태어난 내 아이 서우가 내 사랑의 박물관인 백골부대 앞에 서 있다. 그녀는 내 아내가 되었지만 아직도 난 아내 모르게 그녀를 외사랑하고 있다. 부부가 되었다고 해서 사랑이 끝이 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12월이 가기 전에 아내와 함께 백골 부대로 달려가 나의 외사랑 짝사랑의 추억을 찾고 싶다.

홍대연(대구 서구 신암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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