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애의 고전음악의 향기] 베토벤과 셰익스피어를 사랑한 베를리오즈

입력 2009-12-12 09:00:00

한 장 남은 달력이 시간의 흐름을 실감케 한다. 교향곡으로 치면 결말로 치닫는 4악장의 끝 무렵. 영하로 떨어진 매서운 날씨가 비발디의 '4계-겨울' 분위기와 오버랩된다. 연말이면 누구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면서도 한편으론 자신을 다그친다. 더 이상 미룰 여지가 없다는 이유 때문일까. 세밑, 비탈에 선 절박함이 사람을 그렇게 움직이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11일은 낭만주의 관현악 음악을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낸 '표제음악'(Programme music)의 창시자 베를리오즈(Louis-Hector Berlioz 1803년 12월 11일~1869년 3월 8일)의 탄생일이었다. 또한 10일은 그의 오라토리오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L'enfance du Christ)이 1854년 파리에서 초연된 날이기도 하다.

'교향곡의 시대'라고도 할 수 있는 고전주의 시대의 전통을 낭만주의라는 새로운 스타일로 발전시킨 독일음악이 유럽을 주도하던 19세기 초반, 베를리오즈는 의사가 되기 위해 파리에 왔다. 그곳에서 그의 인생을 바꾸는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다. 바로 베토벤의 교향곡과 셰익스피어의 연극이다. 베를리오즈 스스로 예술가로서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영감의 원천은 이 두 가지라고 했다. 베토벤과 셰익스피어는 베를리오즈를 서양음악사에서 영원히 기억되는 중요한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한 '명작'의 토양이었던 것이다.

당시 그는 음악공부를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갓 학교를 졸업한 27세의 신인이었다. 그러나 1830년, 음악사의 새 장을 쓰게 한 위대한 작품 '환상교향곡'(Symphonic fantastique)을 세상에 선보인다. 약관의 청년으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사랑의 실패와 괴로움이 독특한 열정으로 표출된 것이다. 당시 베를리오즈는 파리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을 공연하던 영국 극단의 배우 해리엇 스미드슨을 짝사랑했다. 아직 무명에 불과했던 그를 알지도 못했기에 스미드슨에 대한 그의 사랑은 짝사랑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이 안타까운 운명은 결국 위대한 음악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후 '환상교향곡'의 성공으로 베를리오즈는 일약 스타가 되고 결국 해리엇 스미드슨과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둘의 행복한 결혼 생활은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그가 음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바로 베토벤 교향곡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짝사랑의 아픔은 학생시절부터 관현악 사용법에 대해 늘 새로운 생각과 시도를 품고 있던 베를리오즈로 하여금 '환상교향곡'을 낳게 했다. 사랑의 열정은 각 악기의 독특한 음색과 효과를 탁월하게 사용해 환상과 감정을 악보에 극적으로 표출해낸 원동력이었다.

우리는 늘 시련과 위기를 기회로 삼아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갈 수 있는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삶은 그런 기회의 시간을 우리에게 잘 주지 않는 것 같다. 160여년 전 베를리오즈야말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자신의 인생에서 남들과는 다른 생각과 방법으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나갔던 바로 의지의 인물이었다.

음악칼럼니스트·대학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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