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월이 만창한데
무명씨
설월(雪月)이 만창(滿窓)한데 바람아 불지 마라
예리성(曳履聲) 아닌 줄을 판연(判然)히 알건마는
그립고 아쉬운 적이면 행(幸)여 귄가 하노라.
"눈 쌓인 밤에 휘영청 비치는 달이 창안에 가득히 비치는데 바람아 부지마라 / 신발 끄는 소리(발자국 소리)가 아닌 줄을 뚜렷이 알지마는/ 그립고 아쉬운 마음에 혹시나 임이 날 찾아오는 소리가 아닌가 생각하게 하노라" 의 뜻이다.
작자가 알려지지 않은 애절한 사랑의 노래다. 누군가를 사랑해 본 사람이라면 이 마음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세상 모든 것이 사랑하는 그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으니까 그 어떤 소리라도 임이 날 찾아오는 발자국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바람아 불지마라고 당부하는 것이다.
초장을 상상해보자. 눈이 내려 쌓인 밤에 휘영청 밝은 달빛이 창에 가득 내려 있다면 사랑하는 임이 없는 사람이라도 그 정경에 황홀해할 것이다. 그런데 그리운 사람이 있다면 오죽하겠는가. 그러니까 바람에게 불지마라고 하소연할 수밖에 없다.
중장은 우리 말 발자국 소리가 아니고 신발 끄는 소리로 풀리는 '예리성' 이란 낱말의 어감이 참 좋다. 그 예쁜 말이 정말 님이 오는 발자국 소리라면 얼마나 더 아름답겠는가. 그런데 아니다. 아닌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고 읊었다.
종장은 자책이다. 눈 내려 쌓인 밤에 임이 올 까닭이 없지만 그래도 그 어떤 소리라도 나면 임의 발자국 소리가 아닐까 놀라게 된다는 것이다. 사랑에 빠져있는 것이다. 시조 3장의 맞물림이 시조의 형식에 녹아들어 참으로 읊는 맛을 높이고 있다.
이 애절함이 사랑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면, 애절해도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은가. 사랑이 병이라면 치료하고 싶지 않은 병이라고도 한다. 이 작품은 사랑을 자연의 섭리에 기대어 풀어낸 재주가 놀랍다. 시조에 사랑 노래가 많지만 그 노래 중에서도 특히 애송되는 시가 되고 있고, 작자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작품성이 높아 고대 시가집 대부분에 실려 있다.
겨울이 깊어가고 있다. 몸이 추우면 마음도 추워지거늘, 누군가를 사랑하여 마음 덮일 일이다. 먼 옛날에 누군가가 읊은 사랑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 일은 깊어가는 겨울밤에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는 것이리라.
문무학 시조시인·경일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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