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시내버스 적응법

입력 2009-12-11 07:10:42

오랫동안 승용차를 이용해 오다 시내버스로 전환한 지 몇 년이 되었습니다. 비싼 기름값도 절약하고 출퇴근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싶었습니다. 처음 버스에 오르던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달아오릅니다. 여러 승객이 나만 바라보는 듯해 여간 어색하지가 않았습니다.

버스의 주된 승객은 학생과 아주머니들입니다. 이들과 화합하려면 소음에 너무 민감해서도 안 되며 자리에 앉을 때도 주변을 잘 살펴야 합니다. 좌석을 먼저 차지하려고 달려드는 아주머니의 용감무쌍함은 정평이 나 있습니다. 빈 좌석이라고 무심코 앉다가는 질주하는 아주머니와 충돌하기 쉽습니다. 대중 버스 속의 으뜸은 누가 뭐라 해도 아주머니라는 사실을 새겨두면 이런 실수는 하지 않습니다.

건강한 팔다리는 버스 이용자의 필수 요소입니다. 노약자들이 오르내릴 때는 아슬아슬하여 바라보기가 안쓰럽습니다. 승용차와 같은 안락함을 기대한다면 버스 타기를 아예 포기하는 게 옳습니다. 급출발과 급정거는 여느 기사들의 기본 매너입니다. 손잡이를 제대로 잡지 못하다가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질 수도 있습니다. 곡예 운전을 일삼는 기사를 만나면 귀한 스릴을 덤으로 맛볼 수도 있습니다.

버스를 탈 때는 캐주얼 복장이 제격입니다. 정장 차림으로 잔뜩 폼을 잡았다가는 이방인처럼 여겨지기 딱 좋습니다. 차내의 남성이라고는 혼자일 수도 있으며 오죽 못났으면 자가용도 갖지 못하고 버스를 이용하느냐 하는 눈총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남자라면 뭇 여성들 틈새서도 능히 견딜 수 있는 용기를 지녀야 하며 화장하는 여성이 짙은 냄새를 풍기더라도 향기로 여기고 참아내야 합니다.

내가 자리를 양보하더라도 고맙다는 인사는 기대하지 않는 게 편합니다. 나이 드신 아주머니일수록 감사 표현을 잘 하지 못합니다. 학생들이 자리를 양보해 주기를 바라서도 안 됩니다. 공부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어린 학생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임을 자인하는 셈입니다. 한 아이의 손을 잡고 한 아이를 업은 새댁을 만나면 잽싸게 일어나는 게 현명합니다. 요즘처럼 출생률이 낮은 세상에 두 아이를 가졌다면 대단한 애국자로 대접받아 마땅합니다.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신문이나 책을 펼쳐드는 승객을 만나면 기분이 무척 좋습니다. 요동치는 버스 안에서 선 채 독서에 열중하는 젊은이는 더욱 돋보입니다. 건강도 챙기고 독서를 할 양으로 시내버스를 자주 이용합니다만 그리 녹록지만은 않습니다. 출퇴근길 버스 안에서 하루 한 시간이라도 책을 읽는다면 메마른 심성이 한결 풍요로워질 거라는 일념으로 오늘도 버스로 향하고 있습니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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