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고물 모아 200만원 벌어 160만원 이웃돕기

입력 2009-12-11 07:47:49

30년간 이웃 봉사 고철 줍는 서기홍 할아버지

대구시 남구 이천동 한 주택. 한눈에 봐도 허름하고 낡은 단독주택 안에는 연탄, 헌옷가지, 파지, 빈병, 고철 등이 수북이 쌓여있다. 이 집 주인 서기홍(73) 할아버지는 이미 이천동 일대에선 유명인사에 속한다. 취재하면서 건네받은 명함엔 '고철 줍는 수호천사 서기홍'이라고 적혀있다.

"재물이란 모을수록 탐욕이 생겨.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더 많이 모으려하고 그 결과, 남에게 무의식적으로 피해를 줄 수도 있는 것 같아.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이웃들에게 베푸는 것이 더 기쁘고 보람 있는 일이지."

서 할아버지가 매일 이천동를 비롯한 대명동, 봉덕동 및 심지어 수성구까지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모은 고철, 파지, 빈병 등으로 버는 수입은 한 달에 약 200만원 정도. 이 중에서 월세 20만원과 각종 공과금, 세금을 포함한 생활비 20만원을 빼고는 나머지 돈 전부를 불우이웃을 위해 쓴다. 그러기를 올해로 30년째이다.

"사실 내가 고철을 주워 파는 금액은 얼마 되지 않아. 모두 동네주민들이 파지나 헌옷 등을 모아 주거나 또는 가져가라고 연락을 하는 경우가 더 많지."

이렇게 번 돈으로 서 할아버지는 저소득층 가구와 홀몸노인들에게 쌀과 김치, 연탄을 구입하고 인근 이발소와 미용실 목욕탕 이용권을 구입해 나눠준다. 뿐만 아니라 매달 무료급식소를 찾아 찬거리와 과일을 정기적으로 전해준다. 또 마을 양로원을 찾아 적적한 노인들에게 즉석 노래자랑잔치를 열어주기도 한다.

이처럼 서 할아버지의 한결같은 이웃사랑에는 남모를 사연이 깃들어 있다.

어릴 적 의붓아버지 밑에서 힘든 생활을 했었고 13세의 나이에 얼음공장에 취직, 고생을 많이 해봤기 때문에 누구보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게 됐다는 것. 그래서 30대 이후엔 대구에서 번듯한 얼음공장도 차려 돈을 벌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남을 돕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시련은 다시 찾아와 80년대 중반에 부도를 맞았고 몇 해 뒤에 부인와도 사별을 하게 된다.

"한창 사업이 잘 될 때는 더 많은 돈을 벌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아내를 여읜 후부터는 그 돈에 너무 매달려 산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

허무하고 막막한 시간이 지나면서 할아버지는 한 푼이라도 더 많은 재물을 얻으려고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종국엔 재물의 노예에서 벗어난 느낌을 받았다. 이때부터 할아버지의 이웃사랑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됐다.

"처음 리어카를 끌며 고철을 모을 때 자식들의 반대도 많았지. 하지만 이젠 슬하의 네 아들이 나를 잘 이해해 주고 있어."

동네주민 여지연(51·여)씨는 "할어버지는 우리 동네를 위해 정말 헌신적이죠.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행색이 남루해도 동네주민들만은 진심으로 할아버지를 존경하고 어린 아이들도 친할아버지처럼 따른다"고 말했다.

정동준(57) 이천동장은 "할아버지의 선행은 이천동을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동네로 탈바꿈시키고 있다"고 했다.

서 할아버지의 꿈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불우이웃들을 돕고 싶고 또 그들이 지금보다 더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이라고 밝혔다. 진정 서 할아버지야말로 이 시대의 산타가 아닐 수 없다.

글·사진 조보근 시민기자 gyokf@hanmail.net

도움: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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