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들여다 보기] tvN의 '재밌는 TV 롤러코스터-남녀탐구생활'

입력 2009-12-10 13:59:24

남녀 심리 정확한 차이 집어내…무미건조한 내레이션 대히트

#남자=바지를 구입하러 온 남자는 쇼핑센터로 들어오자마자 아무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해지고 호흡 곤란이 오기 시작해요. 그러다 판매원과 눈이 마주쳐요. 예상대로 판매원이 생글거리며 들어와서 편하게 살펴보라네요. 그 말에 마음이 세배는 더 불편해졌어요. 판매원이 최고 인기상품이라며 남자가 절대로 소화할 수 없는 바지를 강력 추천해요. 전혀 맘에 들지 않지만 성의를 생각해 살펴봐요. 판매원이 입어보라고 권해요. 입어보고 싶지 않지만 "그럴까요"라고 대답해요. 탈의실에서 나와 거울에 비춰봐요. 마치 입고 꿰맨 바지 같아요. 그때 판매원이 '간지'가 좔좔 흐른다며 감탄을 연발해요. 그 말이 남자에겐 입어보기까지 했는데 "그냥 가면 넌 인간도 아니야"라는 말로 들려요. 결국 심리적 부담을 이기지 못한 남자는 "입고 가도 되죠?" 하며 구입을 결정해요.

#여자=여자는 쇼핑센터에 들어서기 전 옷을 점검해요. 빈티가 나면 점원들에게 무시받기 딱 좋아요. 미리 점 찍어둔 가게에 들어섰지만 점원이 전화통화하느라 나를 아는 척하지 않아요. 투명인간이 되는 느낌이에요. 상한 자존심으론 쇼핑을 진행할 수 없어 그냥 나오려는데 마네킹이 입고 있는 완벽한 블라우스를 발견해요. 여자는 자신이 이 블라우스에 완전히 꽂혔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애써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여요. 옷에 반했다는 사실을 들키면 점원과의 기 싸움에서 밀린 것이기 때문이에요. 결국 여자는 카드를 내밀며 저 블라우스를 새 상품으로 꺼내달라고 해요. 드디어 저 아이가 내 것이 되는 감격적인 순간이에요. 이제 여자는 완벽한 블라우스에 어울리는 완벽한 스커트를 찾을 때까지 돌아봐요. 백화점은 원래 백바퀴를 돌아서 백화점이니까요.

마치 내 속을 들여다보고 만든 프로그램 같다. 케이블채널tvN의 '재밌는 TV 롤러코스터-남녀탐구생활'말이다. 요즘 이 프로그램을 모르면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다. '리얼'에 대한 논란을 비롯해 사회적 논란까지 낳고 있는 지상파 예능프로그램이 주춤하고 있는 사이 케이블 프로그램이 급부상하면서 새로운 코드로 뜨고 있는 것. 이 프로그램은 '리얼'을 강조하는 공중파 예능과는 다르다. '1박2일' '무한도전' 등은 출연자들의 현장 감각에 의존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미리 짜여진 대본에 따라 배우들이 움직인다. 그래서 남녀 심리상태를 꿰뚫고 정확하게 그 차이를 집어낸다.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에 열광한다. 화성과 금성처럼 멀게 느껴지는 남녀의 심리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스타를 탄생시켰다. 성우 서혜정씨는 무미건조하면서도 코믹한 일명 '남녀탐구생활체'로 불리는 내레이션을 대히트시켰다. 성우 내레이션을 패러디하는 UCC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

또 정가은 역시 이 프로그램 덕분에 인기가 급상승했다. 빼어난 외모와는 달리 '남녀탐구생활'에서 주로 털털한 이미지로 망가지는 역할을 하면서 새로운 스타로 떠올라 MBC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새 코너 MC자리를 꿰찼다.

그동안 '찌질남' 콘셉트를 보여줬던 정형돈 역시 '남녀탐구생활'을 통해 한층 몸값을 올렸다.

'남녀탐구생활'의 인기는 트렌드에 민감한 CF계에도 '핫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BBQ 치킨, 남양유업의 떠먹는 요구르트, LG텔레콤이 내놓은 광고 동영상 '후룸라이드 OZ탐구생활' 등은 '남녀탐구생활'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

UCC 패러디 동영상도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내 속의 심리, 다른 사람의 심리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이 프로그램은 막대한 제작비를 들이지 않고도, 톱스타를 기용하지 않고도 틈새시장을 공략한 케이블 프로그램이 참신한 아이디어 하나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해줬다.

그저 출연진들이 노는 모습을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을 넘어서 이제 시청자들은 공감할 수 있는 코드를 원한다는 변화로 해석해도 좋지 않을까.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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