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천재' 항우는 왜 오강을 안 건넜을까
'살아서는 마땅히 세상의 호걸이 되고/ 죽어서는 또 귀신의 영웅이 되어야지/ 지금 항우를 생각하는 것은/ 강동을 건너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라네.' '생당작인걸(生當作人傑) 사역위귀웅(死亦爲鬼雄) 지금사항우(至今思項羽) 불긍과강동(不肯過江東).'
송나라 여류 시인 이청조는 천하를 놓고 유방과 겨루던 항우가 어째서 오강을 건너 강동으로 피하지 않았는가, 따지듯 묻고 있다. 이 시는 '역사의 미스터리'에 대한 질문이자, 항우가 한번의 패배에 낙담하지 않고 오강을 건너 강동으로 갔더라면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른다는 말이기도 하다.
당나라 시인 두목 역시 '제오강정'이라는 시를 통해 같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전쟁의 승패는 기약할 수 없나니/ 수치를 감수하고 참는 것이 진정한 대장부네/ 강동의 젊은이 중에는 인재가 많으니/ 권토중래를 도모하였다면 어찌 알랴.'
'승패병가일불기(勝敗兵家日不期) 포수인치시남아(包羞忍恥是男兒) 강동자제다재준(江東子弟多才俊) 권토중래미가지(捲土重來未可知).'
기원전 221년 진시황이 6국을 통일하고 대제국을 건설했다. 통일 후 시황은 가혹한 형법으로 백성을 닦달했다. 10여년 뒤 순행나갔던 진시황이 사망하고 그의 둘째 아들 호해가 황제에 올랐다. 그의 폭정 역시 아버지 시황에 못지않았다. 힘겨운 부역으로 백성들은 편할 날이 없었고, 농민의 고초는 극에 달했다. 결국 전국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무신 조헐이 스스로 조나라 왕에 올랐고, 위구가 위왕에, 전담이 제왕에 올랐다. 패현에서는 유방이 봉기를 일으켰고, 회계에서는 항우의 숙부 항량이 봉기했다. 항우는 기원전 206년 스스로 서초패왕이라 일컬으며 일어서 천하를 뒤흔들었다. 그는 천재적인 전쟁 영웅이었다. 4년 동안 동서남북을 휘저으며 모두 무찔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초한지'에서 항우와 대적해 천하를 통일하는 데 성공한 유방도 항우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유방은 항우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자신의 영토를 내주고 목숨을 구걸하기도 했다. 그러나 항우의 파죽지세는 4년으로 끝났다. 끝없는 패배 속에서도 끝내 목숨을 부지했던 유방과 달리 항우는 '단 한 번의 패배'로 죽음을 택했다.
기원전 202년 유방이 해하까지 항우를 추격했을 때 항우에게 남은 병력은 800여명이었다. 항우가 사면초가에 몰리자 애첩 우희는 자결했다.(중국 경극 '패왕별희'는 서초패왕 항우와 애첩 우희의 사랑과 이별에 관한 극이다.) 우희가 자결하자 항우는 남쪽으로 달아났다. 그때 남은 병력은 100여명이었다. 여러 차례 포위망을 뚫고 달아나 장강 기슭의 화현 동북쪽 오강진 나루터에 도착했을 때 남은 병사는 26명이었다. 그때 강가에는 배가 한 척밖에 없었다. 항우가 강을 건너 강동으로 도망가면 유방의 군사는 더 이상 추격이 불가능했다. 전쟁 천재 항우는 충분히 재기할 수 있었다. 오강의 정장은 강기슭에 배를 대고 항우에게 말했다.
"강동은 비록 작지만 땅이 1천리요. 인구도 수십만이니 족히 왕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어서 강을 건너십시오."
항우는 껄껄껄 웃으며 말했다.
"강동의 자제 8천명과 강을 건너 서쪽으로 갔는데 오늘날 한 사람도 살아서 돌아갈 수 없으니, 설사 강남의 어르신들이 나를 불쌍히 여겨 왕으로 삼아준다 해도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분들을 대하겠는가?"
항우는 강을 건너는 대신 몰려오는 한 군 수백명을 죽이고, 자결했다. 항우는 어째서 오강을 건너지 않았을까. 2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역사학자나 문인들은 궁금해 한다. 혹자는 사랑하는 우희가 죽고 부하들까지 잃은 상황에서 항우가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또 혹자는 항우가 백성들을 괴롭히는 전쟁을 이제는 끝내고자 했다고 한다. 그는 유방에게 실제로 그런 뜻을 밝히기도 했다. 자신을 굽힐 줄 모르는 오만함에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있다. 패배를 참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항우의 죽음과 관련한 수수께끼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이 책은 역사 속 영웅 17인의 미스터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개인적 비밀을 비롯해 어떤 결단을 내린 이유, 소문만 무성한 관계 등을 파헤친다. 더불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들의 개인적 삶을 엿볼 수 있다. 서초패왕 항우를 비롯해 알렉산더, 한니발, 칭기즈칸, 소무, 워싱턴, 러시아 농민 혁명가 푸가초프 등이 주인공들이다. '인류의 운명을 바꾼 역사의 순간들' 시리즈는 이 책 '영웅편'을 비롯해 '전쟁편' 등으로 나뉘어 출간됐다. 325쪽, 1만5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尹 지지율 46% 나와…2030 지지율도 40%대 ↑"
박수현 "카톡 검열이 국민 겁박? 음주단속은 일상생활 검열인가"
'카톡 검열' 논란 일파만파…학자들도 일제히 질타
이재명 "가짜뉴스 유포하다 문제 제기하니 반격…민주주의의 적"
"나훈아 78세, 비열한 노인"…문화평론가 김갑수, 작심 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