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미의 책속 심리]흐르는 강물처럼(노먼 F. 매클린 지음, 밝은세상 펴냄)

입력 2009-12-09 07:35:22

거대 물고기와 벌이는 한판 승부

맏이는 폐위된 왕, 둘째는 영원한 도전자라는 말이 있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하던 맏이는 동생의 출생으로 폐위된 왕 신세가 되고, 동생은 항상 형보다 뒷전이라는 피해의식을 떨치기 위해 경쟁하고 도전하려는 형제 간의 심리를 빗댄 말이다.

이 소설 '흐르는 강물처럼'은 집안의 절대적인 존재인 아버지에게 밀착되어 있다가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해 나가는 형제의 이야기다. 목사인 아버지는 '예수는 사람을 낚는 어부였다'고 강조하며, 아들에게 종교만큼이나 중요하게 낚시를 가르쳤다. 낚시는 재미가 아니라 장로교풍의 기술로 접근해야 하는 예술이며, 낚싯대를 잡는 오른손을 신성시하였다.

종교와 낚시는 아버지의 상반된 인격에 대한 은유다. 노먼과 폴은 피를 나눈 형제지만 아버지와 관계하는 방식은 확연히 달랐다. 형은 아버지에게 순종하며, 아버지의 종교적 페르소나와 자신을 동일시하여 문학을 사랑하고 절제된 삶을 살았다.

3세 아래인 동생은 아버지의 규칙을 깨고 자기만의 세계를 개척했다. 고향을 떠나지 않고 신문 기자 생활을 하면서 낚시와 도박에 깊이 빠져들었다. 미끼를 문 물고기와 한판 싸움을 벌이는 낚시와 상대방을 낚아채거나 자신이 먹혀버리는 도박은 공통점이 있다. 폴은 내면에서 들려오는 욕망을 포기한 채 패배자로 살기보다 자기 파멸의 길임을 알면서도 욕망을 실현하는 길을 선택했다. 철저한 원칙주의자였던 아버지도 본능과 한계를 지닌 인간이었다. 자신의 이면을 닮은 폴을 두고 아버지는 '그 아이는 아름다웠다'고 회상한다.

폴이 물살이 거센 강에서 거대한 물고기와 벌이는 한판 승부는 절대적인 아버지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이기도 하다. 형은 강인한 체제의 생산자로서 강자였다면, 동생은 자신이 세상의 어떤 체제보다도 강하다고 생각했다.

폴은 도박 빚 때문에 권총 손잡이에 맞아 손목이 으스러진 채 죽임을 당했다. 아들의 오른쪽 손목이 으스러졌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아버지도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끝내 자유를 얻지 못하고 파멸해버린 폴은 형과 아버지라는 넘어야 할 산이 둘이나 있어서 너무 벅찼는지도 모른다.

'가장 오래되었고 아마도 가장 무익하지만, 가장 빈번하게 우리를 괴롭히는 본능 중 하나인 형제애. 피를 나눈 형제에 대한 인식은 죽을 때까지 우리를 놓아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송어가 죽을 때가 되면 상류로 회귀하듯, 사랑하는 사람을 다 떠나보내고 고향으로 돌아와 강물처럼 흘러가버린 가족사를 회고하는 노먼은 깊은 회한에 젖는다. 아버지와 형제는 서로 사랑했지만, 다가가서 돕는 방법을 몰랐다. 그들은 안타깝게 서로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마음과 마음 정신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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