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일반계 고교2곳 내년 3월 자율형 공립고 전환-어떻게 바뀌나

입력 2009-12-08 07:10:31

경북여고 다미반. 바른 자세로 앉아 물을 끊이고 차를 우려내는 과정을 통해 예절을 배우고 있다
경북여고 다미반. 바른 자세로 앉아 물을 끊이고 차를 우려내는 과정을 통해 예절을 배우고 있다
강동고 책쓰기 동아리반. 학생들이 자신의 미래 꿈을 이야기로 구성해 한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강동고 책쓰기 동아리반. 학생들이 자신의 미래 꿈을 이야기로 구성해 한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남구에 사는 중3 학부모입니다. 지원가능한가요?"

대구 동구 신서동에 있는 강동고에는 요즘 이런 문의전화가 자주 걸려온다. 이종운 교감은 "부임한 지 3년째지만 입학 관련 전화가 이렇게 많이 오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대구 중구 남산동 경북여고도 비슷한 상황. 내년 3월부터 자율형 공립고로 전환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두 학교에 대한 학생, 학부모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학교는 고교 지원기간 때마다 겪던 침묵에서 벗어나 활기를 띠고 있다. 과연 '자율형 공립고는 위기에 빠진 일반계 공립고의 탈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대학진학 결과가 고교의 위상을 결정하는 잣대가 되는 풍토에서 우수 학생을 확보하지 못하고 특색 없는 교육과정을 반복하는 일반계 공립고는 학생과 학부모의 관심 밖에 있다. 평준화 교육과정에서 탈피한 자사고와 특목고 등이 상위권 대학 진학을 휩쓸면서 중3 졸업생의 관심도 흡수해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소위 이름난 사립고로 지원이 쏠리는 경향에 따라 일반계 공립고는 우수 학생 유치가 대단히 힘든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내년 3월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자율형 공립고가 일반계고 도약의 가능성을 열어줄지 주목받고 있다. 최근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자율형 공립고로 지정된 강동고와 경북여고를 찾아 자율형 공립고의 활로를 찾아봤다.

◆강동고, 신흥명문 기초 다진다

올해 3회 졸업생을 배출한 강동고. 2004년 3월 개교 당시 신흥 명문고의 꿈을 꿨지만 현실은 따라주지 못했다. 대구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지리적 여건, 대중교통의 취약은 학생 유치에 결코 매력적인 요소가 아니었다. 중학교의 많은 우수 학생들이 과학고, 외국어고 등으로 진학하고 남은 학생들 중 상당수는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면서 우수학생 유치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박재규 교장은 "동구는 특히 학생유출이 심해 초등학교 6학년을 기준으로 이 지역 출신의 지역 내 인문계 고교 진학 가능 학생이 49%밖에 되지 않는다"며 "36학급을 인가받고도 30학급만 운영할 정도"라고 했다.

교과부가 자율형 공립고 지정대상으로 내건 조건은 ▷일반계 공립고 중 비선호 학교 ▷학력 수준이 낮은 학교 ▷주변환경이나 교통여건이 불리한 지역 및 낙후지역 학교 ▷신설학교 ▷교육혁신 의지가 강한 학교 등 5가지. 모든 조건을 다 갖췄다는 학교장의 말은 강동고가 처한 열악한 처지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자율형 공립고 지정으로 강동고는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다. 혁신의지가 강한 학교장을 공모해 학교 운영권을 주고, 교육과정과 교수학습방법 등도 손을 본다. 국민공통 교육과정의 35% 범위 내에서 수업 시수 조정이 가능해 영어, 수학 등 기초과목을 강화하는 교육과정 편성도 가능해진다.

이종운 교감은 "학생 위주의 교육과정 편성과 사교육을 흡수할 수 있는 방과후학교 운영, 학부모가 신뢰할 수 있는 진로·진학지도, 인성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교과부와 교육청으로부터 매년 2억원씩 5년간 10억원의 지원금을 받게 돼 외부강사 초빙을 통한 음악·미술·체육 등 특기 교육 지원, 성적 우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해외 연수 참가 등 예전에 할 수 없었던 특성화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도 세웠다. 동구청으로부터도 매년 1억원의 추가 지원을 약속받아 교육의 질은 높이면서 학부모의 부담은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북여고, 명문고 명성 되찾는다.

경북여고는 자율형 공립고 지정으로 명문여고로서 화려했던 옛 영광을 되찾겠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도심개발은 경북여고에 독이 됐다. 도심 공동화가 빚어지면서 학생들의 지역 이탈이 심해졌다. 우수 학생 지원이 줄면서 학력 하향 현상이 빚어져 83년의 전통도 허울로 남을 위기에 처했다. 동창회 등이 주축이 돼 10억원이 넘는 장학기금을 만들었지만 떨어진 위상을 되살리기에는 역부족. 교육환경 개선이 필요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자율형 공립고 지정은 환골탈태(換骨奪胎)의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반계 공립고와 차별화된 교육과정의 자율적 운영은 큰 매력이다. 일반계 공립고는 정해진 교육과정을 준수해야 하지만, 자율형 공립고는 국민공통 교육과정의 35% 범위 내에서 수업 시수 조정이 가능하다.

김영수 교장은 "2010학년도부터 교과교실제가 도입돼 영어, 수학, 과학 교과의 수준별 수업이 병행되면서 학력신장도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수준별 수업 진행이 이뤄지면 상위권 학생들의 수업 만족도를 높일 수 있고, 학력부진 학생들의 기초 학력도 다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학교는 자율형 공립고의 전신 격인 개방형 자율고가 성적 위주의 학생 선발 없이도 단기간에 학생, 학부모로부터 좋은 학교로 평가받는 부문에 주목, 부산 경남여고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독창적인 학교운영 모델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우창호 교감은 "평준화 보완 명분으로 도입됐던 특목고와 자사고는 학력 중심의 선발과 비싼 수업료, 입시 사교육 심화 등의 부작용을 초래했지만 자율형 공립고는 사교육 유발 없이도 교육의 질을 높여 줄 것"이라며 "입학사정관제에 대비하고 진로지도, 인성지도를 위한 논술, 토론, 책쓰기 등 교과목을 다양하게 신설할 예정"이라고 했다.

2010학년도 신입생 전형은 선지원 후추첨을 통해 배정하는 현행 방식과 동일하지만 자율형 공립고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원자가 늘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011학년도 이후에는 지원범위가 대구 전체로 확대되고, 지원자 중 추첨을 통해 100% 선발이 가능해져 우수 학생들의 지원도 잇따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글·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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