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예술 산책] 홀랜드 오퍼스 /스티븐 헤렉

입력 2009-12-05 07:22:15

은퇴하는 음악 선생과 학생들 '사랑의 하모니'

홀랜드 오퍼스
홀랜드 오퍼스

시드니 포와티에의 '언제나 마음은 태양'(1967)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말썽만 피우는 아이들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바쳤던 흑인 선생님의 이야기를 그린 명작이다. 마지막에 아이들이 선생님의 진심을 이해하고 '선생님께 사랑을'(To sir with love)를 부를 때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다.

'언제나 마음은 태양'은 교육 현장을 무대로 한 영화의 전범(典範)이 된 작품이다. 헌신적인 선생님이 비뚤어진 아이들을 바로 세운다는 이야기는 언제나 감동을 준다.

메릴 스트립의 '뮤직 오브 하트'도 그 중 하나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꿈인 로베르타(메릴 스트립)가 이혼한 후 할렘가 초등학교에서 음악교사로 취직해 사회적 편견, 재정적 어려움, 동료들의 불신 등을 이겨내고 아이들에게 음악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준다는 내용이다.

개성이 강한 아이들을 하나로 이끌어내는 것이 서로 다른 음표로 음악을 만드는 것만큼 힘이 드는 일이다. 마침내 사랑의 하모니를 이뤄낼 때 그 감동은 좋은 교향악을 듣는 것처럼 복받친다.

1995년에 개봉된 리처드 드레이퓨스 주연의 '홀랜드 오퍼스'(감독 스티븐 헤렉) 또한 그렇다.

글렌 홀랜드(리처드 드레이퓨스)는 작곡가 지망생이다. 돈도 벌고 여가시간을 이용해 교향곡을 완성하기 위해 JKF고교의 음악교사가 된다. 4년 동안만 교사 생활을 하리라 마음먹지만 학교 생활은 작곡을 할 만한 여유를 주지 않는다. 딱딱한 이론 수업에 아이들은 싫증을 낸다. 그 와중에 아내가 임신을 하자 작곡가의 꿈을 뒤로 미룬다.

홀랜드는 차츰 아이들에게 애착을 느끼게 된다. 로큰롤과 재즈를 가지고 수업을 해서 호응을 얻고, 교내 오케스트라를 구성해 콘서트도 연다. 낙제 위기에 놓인 축구 선수 루이스에게는 드럼을 가르치기도 한다.

그러나 음악으로 태교까지 했지만 태어난 아들 콜트레인은 청각의 90%를 잃는다. 실망한 홀랜드와 아내의 갈등은 깊어지고, 특수 교육으로 인해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진다.

이윽고 30년간의 교직 생활을 접고 은퇴해야 하는 시기를 맞는다. 4년만 참자고 시작했던 일이 30년을 넘긴 것이다. 홀랜드를 탐탁찮게 여기던 교장이 예산 삭감으로 음악반을 폐지하려고 한다. 학생들은 홀랜드를 위해 음악회를 준비한다. 커튼이 열리고 졸업생들로 구성된 교향악단이 무대에 나타난다. 그리고 홀랜드가 만든 필생의 역작 '아메리칸 심포니'가 웅장하게 연주된다.

제목의 '오퍼스'는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다. '오퍼스'(Opus)는 주로 교향곡 같은 음악 작품을 지칭할 때 쓰는 용어다. 영화 속에서는 홀랜드의 필생의 작품인 '아메리칸 심포니'를 뜻한다. 수천개의 음표가 하나의 음악이 되듯 스승의 삶 또한 오퍼스와 같은 것이다.

애초에 홀랜드는 사명감이나 기대 같은 것이 없었다. 4년만 돈 벌어 교향곡을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수업만 마치면 집으로 달려가 작곡에 매달린다. 그래서 교과서를 읽어 내려가는 딱딱한 수업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 그에게 여교장 제이콥은 "교육자는 인생의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교과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교육이 아니라는 말이다. 수업은 교육을 시작하는 계기일 뿐이다. 지식을 전달하는 것으로 교육을 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교향악의 지휘자가 모든 악기를 다룰 필요는 없다. 그러나 각 악기의 특성을 이해하고, 조화롭게 결합시켜야 하는 책임은 있다.

훌륭한 교육자로서의 삶을 얘기하면서 등장시킨 갈등요소가 아들 콜이다. 훌륭한 음악인으로 키우겠다는 기대는 콜이 청각장애아로 태어나면서 물거품이 된다. 1980년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의 죽음을 전해주려다 그는 포기해버린다.

제자와의 성공적인 교감과 달리 아들과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여전히 그는 '반쪽짜리' 교사다. 학교와 가정, 사회에서 모범적인 '인생의 교사'가 아닌 것이다. 아들은 "아빠는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한다고요!"라고 소리친다. 이 말에 충격을 받은 홀랜드는 빛으로 음악을 보여주는 오케스트라를 생각해 낸다.

아들이 다니는 특수학교 강당에서 농아들을 위한 불빛 음악회를 열고, 비틀즈의 '뷰티풀 보이'(Beautiful Boy)를 수화로 노래한다. 아들을 보며 '뷰티풀 뷰티풀 콜'이라고 노래하는 장면은 특히 가슴 뭉클하다. 사랑으로, 영혼으로 교육하는 참스승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홀랜드는 '언제나 마음은 태양'에서 시드니 포와티에가 연기한 마크 선생님과 닮아 있다. 교실 밖의 갈등까지 녹여낸 참인간으로서의 모습이다. 마크 선생님이 흑백 갈등이 심한 시대적 한계 상황을 이겨냈다면, 홀랜드는 그가 접어야 했던 꿈과 장애 아들로 인한 심리적 위축, 가난 등 외적인 상황을 이겨냈다.

비슷비슷한 스토리의 교육 영화들이 많지만, 볼 때마다 감동적인 것은 헌신적인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랑이 바로 교육의 힘이 아닐까. 한 학년을 마치는 시기, 학창시절 선생님들과의 추억을 떠올려본다.

김중기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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