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지청구를 듣더라도

입력 2009-12-04 07:00:32

아내로부터 종종 듣는 지청구가 있다. 너무 과민하지 말고 세상 좀 쉽게 살라는 의미의 충고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웃 일에 조금 신경을 쓰는 편이다. 불의를 보거나 잘못된 일을 만나면 잘 참지 못한다. 나 말고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이것이 우리 사회를 건전하게 만드는 길이라면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관심이 미치는 범위는 꽤 넓다. 새벽 운동 때마다 만나는 아파트 경비원에서부터 우유 배달 아주머니, 거리의 청소년, 버스 기사, 사회 현상들, 심지어는 내가 즐겨 읽는 신문까지도 그 대상이 된다.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돌아보면 못마땅한 구석이 어디 한 두 곳뿐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외면해 버린다. 잘못 개입했다가는 화를 부를 수도 있는 일인데 나서서 무엇 하랴는 심리로 가득하다.

새벽 운동 길에 아파트 분수대의 물이 콸콸 새는 것을 발견한 후 경비원을 불러 잠그게 하고, 경비원과 신문배달 아주머니가 신문 투입 문제로 다투는 것을 재치있게 해결한 적도 있다. 추운 겨울에 현관문을 열어두는 우유 배달 아주머니, 길거리서 담배 피우고 꽁초 던지는 청소년, 곡예 운전을 일삼는 버스 기사, 오류가 있는 신문도 가만두지 않는다. 이 같은 개입은 남다른 문제의식이나 부단히 자신을 갈고 다듬는 노력이 없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요즘은 어른도 스승도 없는 세상이라고들 한다. 자기 일에만 충실하면 되는 것이지, 괜히 남의 일에 참견했다가 봉변이라도 당하면 어쩌랴 하는 속내가 만연해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사람은 다수의 군중이 아니라 소수의 창조적인 지도자" 라고 한 토인비의 말처럼 잘못된 일에는 누군가 나서는 게 옳다. 주변의 빈정거림이 있어도, 행여 닥칠지도 모르는 피해를 의식하면서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버릇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지" "그냥 조용히 살지 왜 그리도 별나냐" "그렇게 해서 남는 것이 뭐냐" "그러면 너는 과연 무결점의 인간이 되기라도 하냐?"

별별 생각이 다 들 때도 있다. 이런 개선 의지도 연륜을 더해가면서 조금씩 퇴색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날이 밝도록 남녀가 부둥켜안고 자고 있어도, 불씨가 남은 담배 꽁초를 도로에 던지고 가래침을 뱉는 청소년을 보아도, 환한 대낮에 정원의 등이 켜진 채 있어도, 버스 안에서 소란 피우는 젊은이를 보아도 잠자코 있으라면 숫제 그것은 고욕에 가깝다. 못 본 채 외면하기 보다는 누군가 뛰어들어 개선해야만 우리 사회가 한층 더 밝아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에 변함은 없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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