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들의 뇌리에 가장 오랫동안 뚜렷하게 남아있는 장면은 무엇일까? 대통령 취임식도 아니고 격렬한 시위 풍경도 아니다. 바로 스포츠의 극적인 순간이다. 가장 짜릿한 전율과 흥분을 안겨준 명장면은 박세리의 '맨발 투혼'이 아닐까. 박세리가 1998년 US여자오픈대회에서 연못에 뛰어들어 샷을 날리는 모습은 당시 IMF로 고통받던 국민들에게 큰 힘을 줬던 기억이 생생하다. 박세리는 2007년 LPGA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 헌액되면서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선수로 기록됐다. '프로스포츠의 천국' 미국에서는 명예의 전당 헌액자는 더없는 영광으로 여긴다. 자신의 이름을 대중들이 영원히 기억해준다는 점에서 그보다 더 값진 게 어디 있을까.
사실 명예의 전당은 상술에서 비롯됐다. 미국 프로야구 명예의 전당은 1936년 뉴욕주의 시골 마을 쿠퍼스타운에 세워졌는데 지역 경기 침체에 따른 타개책의 일환이었다. 유명 선수들이 쓰던 글러브, 배트 등으로 야구 박물관을 만들어 관광객을 더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다. 그해 처음 헌액된 선수는 통산타율 3할 6푼 7리의 타이 콥, 홈런왕 베이브 루스, 안타 3천415개의 하너스 왜그너, 373승 투수 크리스티 매튜슨, 417승 투수 월터 존슨 등 5명이었다.
결국 그 아이디어는 대성공을 거둬 쿠퍼스타운은 현재 한 해 35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됐고, 프로골프(1951년), 프로농구(1959년), 프로미식축구(1963년) 등에서도 속속 명예의 전당을 세웠다. 명예의 전당은 상술과 명예심리를 교묘하게 섞어놓은 미국 스포츠 마케팅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야구, 골프 같은 스포츠는 물론이고 과학, 산림 분야에서도 명예의 전당이 있다. 그러나 출범 초기인데다 한국인의 특성상 명예심리를 그리 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직까지는 그리 큰 권위를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올해 LPGA 신인상을 받은 신지애 선수는 얼마 전 "내 꿈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 프로야구는 은퇴 후 15년이 돼야 헌액 자격이 생기지만 LPGA는 투어 경력 10년 이상이면 가능하다. 2018년쯤이면 또 다른 한국인 헌액자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인간 승리를 이룬 신지애가 자신의 이름을 길이 남기는 선수로 성장하는 걸 보고 싶다.
박병선 논설위원 l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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