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사진 속 내 얼굴

입력 2009-11-30 07:25:17

곤혹스럽다. 사진 속 얼굴이 낯설다. 중년 여인의 모습을 고개 돌려 외면하고 싶다.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사의 연출 지시에 따라 갖은 포즈를 취한다. 어색하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날 때마다 얼굴 근육이 굳어지는 걸 느낀다. 30여분의 촬영이 끝나자 곧장 컴퓨터 화면을 보여준다. 다양한 표정의 내 모습이 화면에 뜬다. 고집스럽게 다문 입은 더욱 보기 싫다. 눈꺼풀은 언제 저렇게 처졌단 말인가. 눈가의 주름은 골짜기를 이룬다. 사진사는 그 중에 맘에 드는 사진을 고르란다. 하나도 맘에 들지 않는다. 지울 수만 있다면 화면 속의 내 얼굴을 다 지워버리고 싶다. 어찌할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새겨진 얼굴이다.

흑백 사진을 가지런히 정리한 가족 사진첩은 우리 집 역사이며 가족사다. 사진 모퉁이가 삭아서 누렇다. 사진 속 젊은 아버지는 이승을 떠난 지 20여년이나 되었다. 세월이 무상하다. 시간 저편에 남은 기억의 조각들이 사진을 통해 하나 둘 희미하게 떠오른다. 아득하다. 가슴이 아려온다. 그것은 마치 가뭇없이 하늘로 사라져간 방패연을 잡으려는 손짓처럼 애절하다. 최초의 내 사진은 동생과 같이 찍은 것이다. 하얀 한복을 입고 동생을 안은 젊은 어머니의 모습이 외려 낯설다. 앞머리를 가지런히 정리한 단발머리의 여자 아이가 나를 빤히 바라본다.

사진 작가 최민식의 인물 사진은 정직하다. 젊은 시절부터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한 그는 줄기차게 인간을 소재로 사진을 찍는다. 주름투성이의 노인, 해맑은 얼굴의 어린이, 뼈만 남은 어린이를 안고 있는 마더 테레사의 모습 등 그의 사진 속에는 수많은 사람의 표정과 생각이 담겨 있다. "나의 사진 속에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으며, 말로 나타낼 수 없는 그 무엇이 숨 쉬고 있다."라는 그의 말처럼 최민식의 사진에는 존재의 절규가 느껴진다. 사진 속 얼굴에서 삶의 진실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또한 사진을 통해 사람을 읽는다고 말한다. 한 인간의 얼굴 사진에서 살아온 이력을 본다. 이런 점이 사진이 주는 매력이 아닐까.

언제부터인가 사진 찍는 것이 싫어졌다. 나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행위가 부담스러워진 것이리라. 어쩔 수 없이 단체사진을 찍어야 할 경우에도 표정 관리가 힘들다. 내 얼굴에 눈길이 머무는 순간 눈을 감고 싶다. 감출 수 없는 나이와 성격까지 그대로 드러난다. 카메라는 피사체가 지닌 무의식의 세계까지 포착하는 놀라운 기계다. 인간의 눈이 지닌 선입견과 관습을 배제한다. 사진 속 내 얼굴에는 내가 살아온 길이 새겨져 있다.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사진은 나를 비추는 정직한 거울이기에 내 얼굴은 내가 책임지고 가야 할 과제다. 일 년에 한 번씩 사진을 찍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경희<달서여성인력개발센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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