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힘든 이길, 하지만 누군가는 세상에 큰울림 전해야죠"
세상살이 2가지 법칙, '무언가에 튀면 외롭다. 불편한 진실은 말하면 괴롭다.'
이 복잡다단한 세상에 살면서 튀지 않고, 불편한 진실은 다소 답답해도 말하지 않고 '그러려니'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일 터. 그게 부딪히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외롭고 괴로운 길을 가는 이들은 언제든지 있게 마련이다. 때론 이들을 영웅으로 만들기도 하겠지만 대다수는 이들의 정신적 희생을 강요한다. 누군가 깨쳐야 조금 더 진실에 가까워진다.
25일 지역에서 외롭고 괴로운 길을 선택한 두 사람을 만났다. 한 사람은 고혈압 환자에서 약 대신 식단조절(채식)을 권하는 신경외과 전문의, 또다른 사람은 영남 시조창(時調唱)의 명맥을 이어가고 이를 보존하는데 한 길을 가고 있는 김향교 영제시조 보존회장.
둘은 "남들이 당장 알아줄 리야 없겠지만 그동안 삶과 현실에 부닥치면서 겪었던 일들은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어떤 부분이 힘들었고 또 무엇이 진실에 가까운 얘기인지 한번 들어보자.
◆18년 채식주의자, 황성수 박사
'외로워도, 큰 울림을 전하는 채식 전도사.'
대구의료원 제1신경외과 과장 황성수(58) 박사는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대구고를 졸업하고 경북대 의대에서 공부한 전문의 닥터. 평범한 의사의 길을 가던 황 박사가 달라진 것은 18년 전.
황 박사의 말을 빌리자면 '비건'이 되었다고 한다. '비건(Vegan)'이란 완전 채식주의자를 말하며, '베지테리안'(Vegetarian)보다 한 단수 높은 단계라고 말했다.
수많은 고혈압, 당뇨병 환자들을 진료하다 보니 그 원인이 10명에 9명 이상은 식단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 동물성 식품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면서 환자들에게 현대의학에서 처방하는 약만 권한다는 건 양심에 반하는 일.
황 박사는 당장 자신부터 변했다. 철저한 채식주의자로 탈바꿈을 했다. 경북 성주에 자신이 먹는 채소를 직접 재배하는 텃밭이 있다. 자신의 밥상에 오를 채소이기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점심도 직접 싸온 채소도시락으로 해결한다. 병원식당에서 먹는 경우도 있지만 동물성 반찬이나 국은 절대 입에 대지 않는다.
18년째 그는 환자들에게 채소·과일 위주로 식단을 바꾸라고 권유한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약을 처방하지 않는다.
주변에선 황 박사를 이상하게 본다. 채식이라는 단순한 식단조절로 현대의학이 치료하는 많은 부분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이 배척하는 이유였다.
그는 "그동안 많이 따돌림 아닌 따돌림을 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이제는 현대의학이 한번 돌아볼 시점이 됐다"며 "대체의학이라는 측면에서도 분명 효과가 있고,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때, 또 그런 처방법이 있다면 한번쯤 검토하고 고려해봐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런 지역의 한 채식주의자 의사인 황 박사가 최근에는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고혈압, 당뇨 등으로 인한 각종 합병증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1천만명에 이를 정도로 많아진데다 현대의학으로도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 시쳇말로 황 박사는 '떴다'. 지상파 TV프로에서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말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으며, 외부에서도 초청하고 싶어하는 인기강사. 일단 모토가 눈에 확 들어온다. '목숨 걸고 편식하라.'
10년 전 인도주의 실천의사협의회 홈페이지에 올린 글은 책으로 출간됐다. 그는 이곳에 한국적인 동물성 음식의 대표인 곰탕을 빗대 '곰탕이 건강을 말아먹는다'는 소제목을 달았는데, 3년 전 출판사에서 이를 보고 '책 제목으로 딱 좋다'며 책으로 편찬해냈다.
황 박사는 "지금도 제가 얘기하는 채식에 대해 안티(Anti-반대) 의견이 많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를 의식해 하지 않을 수는 없다"며 "물론 현대의학이 가장 안전하고 우수한 인간질병의 치료법이 되겠지만 대체의학이나 식이요법 등도 전혀 무시할 사안은 아니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당뇨·고혈압이 부자병이었는데 이젠 대한민국 표준식단의 변화로 광범위한 계층에서 고통받고 있다"며 "채식으로의 철저한 전환에 답이 있다"고 덧붙였다.
◆영제시조의 맥을 이어가는 김향교 보존회장
'영남은 학문, 호남은 문화·예술.'
영남에서 판소리나 시조창을 한다고 하면 잘 알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지역에도 영남만의 시조창인 영제(嶺制)시조가 있다.
영제시조는 경상도인의 굳센 기질과 강한 어조가 특징이다. 시조창 역시 다소 억세게 들릴 정도로 남성적이다. 전라도 지역의 완제(完制)는 이와 반대로 구성지고 여성적이다. 영제시조 명창에는 손덕겸-김영도-이기릉 선생 등 계보가 있다. 무형문화재 지정은 이기릉 선생이 처음이고 현재는 박선애 선생이 그 뒤를 이어가고 있다.
박선애 2대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와 김향교 전수교육 조교가 명맥은 유지하고 있지만 그야말로 고군분투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도 거의 없을뿐더러 생계유지조차 쉽지 않은 상황.
특히 전수교육 조교인 김향교(45) 영제시조 보존회장은 13년 전 96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무형문화재 제6호 이기릉 선생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애제자다. 김 회장은 외롭지만 이 영남시조창의 맥을 잇는 일에 혼을 바치고 있다.
두달 여 전에는 다양한 영제시조의 악보들을 하나의 책으로 묶어 '영제 시조보'라는 악보집을 발행하기도 했다. 그는 "부디 영제시조가 그 지방색을 벗지 말고 우직하고 정직한 경상도의 기상처럼 잘 보존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또 이달 초 서울에서 열린 전국시조명인·명창 초청발표회에서 영남지역을 대표해 영제시조창을 세 곡이나 부르고 내려오기도 했다.
이렇듯 여성으로서 영남시조창의 명맥을 잇는데 청춘을 바친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터. 하지만 그는 22년 전 이기릉 선생과의 만남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경북 청송에서 태어나 고교 때 대구로 전학 와, 영남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국어교사나 국어학자를 꿈꿨던 한 여대생이 영남시조창의 맥을 잇고자 뚜벅뚜벅 한 길을 가고 있는 것.
이기릉 선생은 당시 대학을 갓 졸업한 김 회장의 목소리와 우리 것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고는 모든 것을 전수해주고자 했으며 아낌없는 주는 나무가 되는 것을 스스로 자청했다. 김 회장은 이를 거부하거나 피할 겨를도 없었다.
본격적으로 영제시조에 대한 가르침을 받으면서 아예 영남시조창에 대한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한가락 쭉~ 뽑으면 그 운치를 아는 이들은 흥이 덩실덩실, 시원시원한 목소리에 가슴이 뻥 뚫린다. 김 회장은 경북대 대학원 국악학과에선 '영제시조 창에 관한 연구'라는 석사 논문을 써 다시 한번 심도깊은 연구를 했다. 지난해 2월에는 경북대에서 박사과정도 수료했다.
현재 김 회장은 시조창을 불러야 할 무대가 있으면 기꺼이 한 수 읊으며, 영남대·대구예술대·경북예고·육군3사관학교 등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여성의 몸으로 혈혈단신 영제시조를 지켜내는 어려움도 많다. 시대가 급격히 변해 사람들의 관심이 떨어진 측면도 사기를 떨어뜨리지만, 대구시에서 당시 이기릉 선생의 전수자를 정할 때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선정되지 못해 전수자와 애제자 사이에 간극이 벌어져 있는 것.
그는 "지금은 나이 제한이 없어졌지만 당시 그런 행정으로 인해 그나마 얼마남지 않은 영제시조에 대한 후계자들의 단합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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