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군인대학교

입력 2009-11-27 07:13:12

여성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요, 더 싫어하는 것이 군대서 축구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신물이 날 정도로 자주 들은데 따른 식상함 때문이겠지요. 나는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신이 납니다. 일생에 있어 행복하다고 느낀 몇 안 되는 일 중에 군대 생활을 꼽으니까요. 그렇다고 남들보다 편하게 지낸 것은 결코 아닙니다. 유격을 포함한 온갖 훈련도 기꺼이 감당하면서 군대 생활을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입대 전에는 누구나 자신의 이상적인 군대 생활을 그려보기 마련입니다. 대충 군 생활을 마치고 나오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회생활과의 공백을 최소화 하면서 무사하고 보람찬 병영 생활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훈련을 마치고 나면 이등병서 병장까지를 구체적으로 설계해 보게 됩니다. 어떤 자세로 병영 생활을 영위할지는 오직 본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고 하더라도 굳은 의지만 있으면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일입니다.

믿기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군 생활 삼년 중 거의 매일 새벽에 일어나 겨울철에도 냉수마찰을 하고 조깅을 하였습니다. 바깥에서 해오던 버릇을 차츰 군 생활이 안정되면서 실천에 옮긴 것뿐입니다. 다소 어려움은 있어도 마음을 굳게 먹으니 가능하였습니다. 안일한 자세로 삼년을 때우겠다는 병사가 간혹 있지만 그럴 때의 지루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매사 부정적이고 피동적인 사람은 아무리 좋은 기회가 주어져도 자기 것으로 소화하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나는 달력에다 동그라미를 그으면서 제대 날짜를 꼽거나 하급자를 구타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고단하고 싫증나는 군 생활이라지만 유익을 구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였습니다. 매사는 마음먹기에 달려있음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부모에 대한 고마움을 새기고, 여러 전우를 사귀며,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설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휴가 기간 중에는 긴 여행을 통해 견문 넓히기에 딱 좋습니다.

심심찮게 불거지는 병역 비리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병역 의무를 기피하고 어떻게 인생을 자신있게 살 수 있겠습니까.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 살아가기보다는 군에 가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부끄러운 부모 아래서 자랑스러운 자식이 나오기는 어렵습니다. 우리 삼형제는 물론이요, 아이들 모두 현역으로 복무한 사실에 긍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군대'는 청년 시절을 허송하는 곳이 아니라 폭넓은 경험과 집단 가치를 배우는 '군인대학교' 라는 생각에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성병조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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