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정부도 모르는 세종시 건설 이유

터키의 수도는 앙카라이다. 터키의 국부(國父)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1923년 터키공화국을 세우면서 이스탄불에서 이곳으로 천도(遷都)했다. 천도 당시 앙카라는 인구가 3만 명에 불과한 시골 마을이었다. 케말이 궁벽한 이곳에 공화국 수도를 건설하려 한 이유는 이스탄불이 상징하는 과거, 오스만제국과의 단절이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터키 지식인들은 물론 이스탄불에 있는 외교공관들의 반대도 컸다. 이처럼 어려움이 많았지만 앙카라는 착실하게 성장해 입법'사법'행정 기능과 명문 국립대들이 밀집한 행정수도로 자리 잡았다.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는 해안 지역에 밀집된 인구를 분산하고 낙후된 내륙을 개발한다는 목적에 따라 건설된 100% 계획 도시이다.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쿠비체크 대통령에 의해 1956년부터 추진돼 1960년에 완성됐다. 초기에는 산업 기능 부족과 공무원의 이주 거부로 도시 공동화라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제는 세계은행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가진 도시 1위'로 꼽을 정도로 달라졌다. 공무원들이 이주해오면서 대학과 기업도 잇따라 몰려오고 있다고 한다. 최근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브라질리아를 행정수도 건설의 실패 사례로 꼽았으나 실상은 다르다. 국가적 프로젝트로 추진되는 신도시 건설에는 이처럼 명확한 철학과 목표가 있어야 한다.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이 제시됐다. 기존의 '행정중심복합도시'에서 '교육과학중심경제도시'로 성격을 바꾸고, 이를 위해 포항이 유치를 추진 중인 막스플랑크 연구소를 '뺏어오는' 것을 포함, 국내외 22개 연구기관을 유치하며 '드라마틱한' 수준의 특혜를 통해 기업을 끌어들인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어떤 도시를 만들려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대한민국에는 없었던 명품도시를 만들겠다는 뜻인 것 같다.

문제는 세종시를 왜 이런 명품도시로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 정도의 지원과 특혜를 받는다면 국내 모든 지역이 정부가 계획하는 도시로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 세종시 수정이 타당성을 가지려면 어떤 목적에서 세종시를 교육과학기업중심도시로 육성하려 하는지, 그리고 왜 세종시는 되고 다른 지역은 안 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부터 제시해야 한다.

세종시의 원래 청사진이었던 행정중심복합도시는 명확한 목적이 있었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일부 중앙 행정기관만 이전하게 됐지만 어쨌든 중앙 행정기관의 지방 이전을 통한 지역균형발전이란 목표는 살아있었다. 그러나 행정기관 이전이 백지화되면서 정부 스스로도 왜 세종시를 건설해야 하는지 모르게 됐다. 수정안대로 세종시를 건설할 경우 국익 차원에서 어떤 효과가 있는지 설명이 없는 것을 보면 분명 그런 것 같다. 세종시 수정안이 단순히 기존 계획의 백지화에 따른 충청인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급조한 잡탕 대책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세종시 건설의 정당성을 굳이 찾자면 지역균형발전이다. 중앙 행정기관 이전만으로 온전한 지역균형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교육과학기업중심도시 건설도 좋은 대안의 하나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는 다른 지역에서 기업이나 학교, 연구기관을 뺏어오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원칙은 이미 다른 지역에 자리 잡은 기업은 물론이고 이전할 가능성이 있는 기업'기관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기업 유치를 위해 내건 엄청난 특혜는 다른 지역으로부터 자연스럽게 기업을 빼앗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이미 이런 움직임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는 기존 도시에 없는 기업을 유치하겠다고 했으나 이 역시 설득력이 없다. 기존 도시에 없는 기업이 세종시로 가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왜 다른 도시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인가.

철학과 목표가 없는 도시 건설은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그래서 실패할 가능성도 높을 것이다. 이는 조금만 생각하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런데 정부만 그것을 모르는 듯하니 답답하다.

鄭敬勳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