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 대신 영어학원서 "아이 러브 베이스볼"

입력 2009-11-26 09:12:56

경상중 야구부원, 학원 무료 수업에 공부 재미

25일 대구 달서구 모 어학원에서 경상중 야구부원들이 외국인 강사의 지도 아래 영어 수업을 듣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25일 대구 달서구 모 어학원에서 경상중 야구부원들이 외국인 강사의 지도 아래 영어 수업을 듣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25일 대구 달서구의 ○어학원. 오후 7시가 되자 붉은 야구 유니폼에 까까머리, 까맣게 그을린 얼굴을 한 중학생 30명이 강의실에 차례로 앉았다. 외국인 강사가 들어와 교재를 펴 들고 읽어내리자 다들 천천히 따라 했다. 이어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일까요"(Where am I from)라는 외국인 강사의 질문에 한 학생이 "You are from England"(영국에서 왔어요)라고 답했다.

수강생들은 경상중(감독 손경호) 야구부원들이다. 운동부 학생들이 방과 후 단체로 영어 강의를 학원에서 듣는다? 낯선 모습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6월부터 매주 수요일 2시간 40분씩 외국인과 국내 강사의 영어 지도를 받고 있다. 일찍부터 운동장에서 살다시피 한 야구부원들이 쉽게 공부에 빠져들지 못하리라는 생각은 오산. 시합이 있어 강의를 거를 경우 따로 보강을 하고 진도가 처지는 학생들은 나머지 공부까지 소화한다. 매주 외워야 할 단어 숙제도 잘들 챙긴다.

주장 전상혁군(2학년)은 "사실 외국인 선생님의 말은 아직 잘 못 알아듣지만 나중에 한국인 선생님에게 물어가면서 모두들 열심히 배운다. 프로야구 선수가 되든, 평범한 사회인이 되든 영어는 필수라고 생각한다"며 "고교에 가서도 계속 배우러 오고 싶다는 아이들도 여럿"이라고 전했다. 학부모들도 이 같은 수업이 반갑다. 전호은군(학년)의 어머니 김은영씨는 "아이가 제 누나에게 영어 단어를 묻고 숙제를 한다며 책상에 앉아 있는 걸 보니 정말 기뻤다"고 했다.

야구부원 전체가 강의를 듣자면 수강료도 만만치 않겠지만 모두 무료다. 이 학원 손재호 대표의 배려 덕분이다. 손 대표는 신혼여행 대신 부인과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를 보러갔을 정도의 야구광. 그는 "아직 학생 운동선수들이 학교 수업에 제대로 참가하기는 어렵다. 이 아이들 대부분도 학교 졸업 후 바로 사회로 진출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최소한의 기본 소양과 지식은 쌓도록 해주고 싶었다. 부담이 된다기보다 도움을 주게 돼 오히려 즐겁다"고 말했다.

문제는 학업 때문에 운동 성적이 떨어지면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실패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는 점. 하지만 경상중 야구부는 최근 2010 소년체전 대구 대표 1차 선발전에서도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경상중 신영호 교장은 "훈련이 끝나고 몇 시간을 공부에 할애한다고 운동 실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며 "오히려 공부를 하다 보니 야구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는 것 같다"며 손 대표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손 대표는 다음 주부턴 강의 시간을 일주일에 두 번으로 늘리기로 했다. 운동 선수 역시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이라는 생각이 야구부원들에게 제대로 전해지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 물론 앞으로도 경상중 야구부원들에겐 학원 문호를 열어둘 생각이다. 미국 프로야구 무대를 밟은 한국 선수들은 다들 영어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몇 년 뒤 경상중에선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일찌감치 떨쳐낸 채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야구 꿈나무들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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